안치용, 10년여 겨울 끝에 찾아온 봄날
안치용, 10년여 겨울 끝에 찾아온 봄날
  • 박공숙
  • 승인 2008.06.10 13:4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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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 4년, 프로 2군 6년 딛고 당당한 클린업트리오로 우뚝
▲ 5일 오후 잠실야구장에서 프로야구 LG 안치용 선수가 인터뷰를 하고 이고 있다.
'낮 경기 6년차.' 1군과 달리 야간경기가 없는 2군에서만 6년을 보낸, 안치용(29 · LG)의 수식어였다. 프로데뷔 7년만에 1군 첫 홈런을 날린 지난달 11일 한화전을 마친 뒤만 해도 "주전들이 돌아오면 백업으로 물러날 것"이라던 안치용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1군 기회를 얻게 해준 박용택의 부상 복귀 후에도 안치용은 당당히 LG 클린업트리오로 나서고 있다. 그도 그럴 것이 9일 현재 35경기 타율 3할7푼4리, 홈런 5개, 31타점의 불방망이다. 40개 정도 부족한 규정타석(186개)을 채운다면 당당한 타격 1위다. 대학 4년 방황까지 안치용의 10년여 기나긴 겨울과 뒤늦게 맞은 봄을 들어봤다.

▲'한국의 이치로'로 불리던 화려한 고교시절

안치용의 고교 시절은 화려했다. 2학년이던 96년 황금사자기 우승과 최우수선수상을 거머쥐었고 이듬해 청룡기, 황금사자기, 봉황기를 휩쓸었다.

'신일고 3인방'을 이룬 1년 후배 봉중근, 김광삼(이상 LG)도 뛰어났지만 안치용이 단연 눈에 띄었다. 파워에 정교함을 갖춘 배팅, 수비, 송구 능력도 출중했다. 도루상을 받을 만큼 빠른 발과 야구센스까지 그야말로 야구에 필요한 요소를 모두 갖췄다는 평가를 받았다.

그래서 얻은 별명이 '한국의 이치로'였다. 일본의 야구천재 스즈키 이치로(시애틀)를 연상시킨다는 뜻이다. "당시에는 적수가 없었죠. 중근이, 광삼이랑 외야에 있으면 무서울 게 없었죠. 조금 건방질 수 있지만 다른 학교보다 한 수 위의 기량이었던 것 같아요."

▲자만과 나태는 뼈저린 2군 생활을 낳고...

98년 LG에 1차 지명된 안치용은 당시 대부분 다른 선수들처럼 대학(연세대)에 진학했다. 화려한 고교시절이 독이 된 것일까. 안치용의 기량은 정체를 넘어 퇴보하기 시작했다. 고교 때 명성에 안주해 해이한 생활을 보낸 탓이다.

"너무 자신만 믿고 게을러졌죠. 훈련도 거의 안 했고 밖으로만 나돌았어요. 몸도 불고 스윙스피드는 갈수록 떨어졌죠" 결국 안치용은 '연세대 4번타자로 입학해 9번으로 졸업한 선수'라는 비아냥을 받았다.

졸업 후 안치용은 LG 입단했다. 그러나 고교 졸업 당시와는 천양지차였다. 고려대 출신 입단 동기 박용택(3억원)의 절반도 안 되는 계약금 1억 3,000만원이었다.

나태한 대학 생활에 2군은 필연적이었다. 그럼에도 안치용은 여전히 고교 때의 영화(榮華)에 파묻혀 있었다. "2군은 잠시 거쳐가는 곳인 줄 알았죠. 절박함보다 오히려 여유가 있었어요." 6년 통산 1군에서 한 시즌(126경기)도 안 되는 105경기만 치른 채 2군에서 6년이 흘렀다.

▲2군캠프 최고참 충격…"이제 고교 실력을 되찾았을 뿐"

그런 안치용에게 충격을 준 것은 지난 겨울 2군 전지훈련이었다. 따뜻한 호주, 사이판으로 떠난 1군과 달리 경남 진주에 꾸려진 2군 캠프에 안치용보다 나이많은 선수는 더이상 없었다. 추웠지만 등에는 식은 땀이 흘렀다. "2군 최고참이었죠. 어린 후배들 앞에 나약한 모습을 보이기 싫어 더욱 열심히 훈련했어요."

그러다 부상을 당한 박용택의 공백을 메우기 위해 지난 4월말 1군 무대에 모습을 드러냈다. 이후 안치용은 1일 한화전 연타석홈런을 때려내는 등 맹타를 휘둘렀다. 고교 시절 타고난 승부사의 귀환이었다. "뜻밖에 찾아온 기회를 강하게 잡았죠. 이제는 한 타석, 한 타석 승부를 건다는 생각으로 시합에 임하고 있죠. 더 이상 게으름은 없습니다."

기회를 준 김재박 LG 감독의 신뢰 속에 붙박이 3번으로 나서면서 자신감도 나날이 붙고 있다. "상대 에이스의 공을 쳐내면서 여유가 생기고 경기 시야도 넓어졌죠. 경기할수록 충분히 통한다는 생각이 듭니다."

남은 경기 목표는 일단 소박하다. "이제 겨우 고교 때 기량을 다시 찾은 것 같은 느낌입니다. 일단 올시즌은 지금 성적을 유지하는 것만도 성공입니다." 6년여, 아니 대학시절까지 10년여만에 맞는 안치용의 봄날은 소중하기만 하다.

<노컷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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