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주 단오제의 추억
전주 단오제의 추억
  • 김태중
  • 승인 2008.06.01 18: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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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중<편집부국장>
초등학교 2∼3학년 때의 일일 것이다. 할머니와 어머니의 손을 잡고 그 먼길을 걸어 덕진연못을 찾았던 기억이다. 당시 사는 곳은 물왕멀이라 덕진연못을 가는 길은 현재의 동초등학교를 지나 전주여고의 옆길로 대학병원의 고갯길을 넘어간 것 같다.

당시 이 길은 과수원과 밭들이 자리한 구릉지역으로 탱자나무 오솔길을 지나 고갯길(현 대학병원 인근)을 넘어서면 내리막길이 이어지면서 소나무가 무성한 왕릉에 이르렀다. 소나무 밭에 앉아 땀을 식히고 한참을 걸어 덕진연못을 찾은 할머니와 어머니가 연못물에 머리를 풀어내리던 기억이 흐릿하다.

나와 같은 어린이는 남녀를 막론하고 옷을 훌러덩 벗고 목욕을 했으며, 나이 든 여인들은 저고리를 벗어 재치고 머리를 감았던 것 같다. 당시 덕진연못 옆으로는 노송들이 자리했으며, 노란 창포꽃이 반발하고, 몇 개의 채양이 쳐져 잔치가 열렸던 것 같다. 조금 더 나이가 든 이후에도 할머니와 함께 한두 번 더 덕진연못을 찾았다. 시골에 계셨던 할머니는 단옷날이 오면은 전주에서 잔치를 한다고 오셨고 꼭 그렇게 먼길을 걸어 덕진연못을 찾았다.

단옷날 덕진연못을 찾은 것은 그만큼 전주단오제가 유명했고, 창포물로 머리를 감고 목욕을 하면 잡병이 없어지고 재액을 막는다는 믿음 때문이었던 것 같다. 어릴 적 매일 새벽같이 일어나 윗둠 샘에서 깨끗한 첫 물을 길어다 부뚜막 위 대에 물을 떠 올려놓고 치성을 했던 할머니로서는 단옷날 창포 머리감기가 세시풍속을 넘어 민중신앙의 하나였던 것 같다. 종지에 물을 떠놓고 조왕신(부엌신)에게 가정의 평안을 기구하듯이 단옷날 덕진연못에서 목욕을 하면서 나쁜 기운을 막고 한해 농사를 잘 짓기를 기원했을 것이다.

옛 어르신들의 민중신앙에 가까운 세시풍속이었던 전주단오절 행사가 40여년만에 제 이름을 찾아 오는 7, 8일 양일간 전주 덕진공원에서 펼쳐진다. (사) 풍남문화법인의 주관으로 열리는 단오제는 7일 덕진공원 정문과 수변무대에서 축하공연 등의 개막행사를 시작으로 후문 앞에서는 창포물맞이와 단오음식 시식회, 수리취떡 만들기, 단오 소원등 달기, 단오부채 만들기 체험과 민속놀이 등이 진행된다.

그러나 단오제가 이름을 찾았다고 하루아침에 전주단오제의 옛 모습과 명성이 찾아질 수는 없다. 옛것을 그대로 재현한다 해도 예전만 못할 것이다. 다행이 전주단오제는 창포물 머리감기라는 전통의 고유성과 맛과 멋의 고장으로서의 단오먹거리, 전주태극선, 합죽선 등 단오부채만들기 등의 전주만의 전통의 맥이 이어오고 있다. 창포물 머리감기는 불과 얼마 전까지 덕진연못에서 행해졌으며, 전주는 맛의 고장으로서 단오의 먹거리를 풍부하게 할 수 있다. 또한 전주의 합죽선과 태극선이 유명한 것도 단옷날 조상이 주변사람에게 무더운 여름을 잘 보내라고 부채를 선물했던 것과 연유가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전주라는 문화와 전통이 단오와 함께 만나면 전주만의 브랜드로 강릉단오제를 넘어설 수 있다는 생각이다. 여기에 주민이 함께 참여해 단오제의 주체가 되고 즐길 때 진정한 전주단오제가 될 것이다. 또한 전주단오제를 제대로 계승하기 위해서는 풍남문화법인 주관에서 벗어나 전주단오제전위원회의 설치가 필요한 시점이다. 전주영화제 예산이 20억원에 이르고 있는데 비해 1억5천만원에 불과한 전주단오제 예산의 확대도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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