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목(算木)과 산법
산목(算木)과 산법
  • 소인섭
  • 승인 2008.05.29 16:11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우리는 수학을 생각할 때면 흔히 서양의 수학만을 떠올리게 된다. 초등학교부터 지금까지 우리가 배운 수학체계는 모두 서양의 언어와 부호를 사용한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의 조상들도 수학에 대한 상당한 조예가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우리의 조상들은 수학을 할 때 산목(算木)이라고 하는 독특한 도구를 이용하였다. 그리고 그 도구를 사용하는 방법을 두고 산법이라 일컬었으며, 산목을 이용하여 단순한 셈뿐만이 아니라 음수의 개념까지 표현할 수 있었다.

산목을 이용한 계산 과정의 큰 특징은 과정은 생략하고 결과만을 표시하는 것이다. 현재 우리가 배우는 수학의 푸는 과정도 중시하는 교육 방법과는 조금 다른 모습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 도구는 중국에서부터 도입되었는데 후에는 오히려 우리 조상들이 즐겨 쓰고 그 활용도도 발달 시켜 중국이 역으로 배워 갔다.

1713년 숙종 때 청나라 사신 하국주와 조선의 산사 홍정하의 수학대결은 우리나라의 수학이 중국에 비해서도 뒤지지 않았음을 보여준다.

전형적인 조선의 수학자 홍정하는 1684년 태어난 중인으로 처가역시 수학자의 집안이었다. 그는 구일집이라는 책을 저술하였는데 이 책은 기존의 구장산술 등을 보완한 것으로 최석정의 구수략과 더불어 기존의 27개의 문제를 166개로 증보 편찬한 책이다. 또한 우리의 조상들은 수학문제를 풀 때에는 문제를 시로 지은 후 산목을 이용해 문제를 풀어 풍류와 수학을 함께 즐기는 멋스러움도 지니고 있었다.

조선시대에 산사는 수학을 전문적으로 다루는 중인출신의 계급이었다. 이들은 취재라는 과거에서 합격하여 주학입격안에 이름이 올렸으며 엄격한 조직을 통해 전문인으로서의 경제적 사회적 위치를 높여나갔다. 이들의 주요업무는 계절의 변화를 예측하고 세금을 합리적으로 계산하며, 전국의 토지를 측량하는 것이었다. 이는 산사들이 휴대하고 다녔던 치부록이라는 수학책에 잘 나타나있다.

조선시대의 또 다른 대표적인 수학자로는 병자호란 때 명 제상이었던 최명길의 손자로 영의정을 지냈던 최석정을 들 수 있다. 그는 구수략이라는 수학책을 지었는데 그 책에는 마방진에 관한 것이 소개되어 있다. 최석정은 수학에 많은 매력을 느끼고 있었지만 정수론같은 학문을 체계적으로 연구하진 않았다.

우리나라의 수학수준은 내가 섣불리 생각한 것보다 훨씬 앞선 것이어서 놀라웠다. 조선시대에 이미 고차방정식, 행렬, 수열, 고급해석학 등에 대한 연구가 있었으며 ‘구장술해’에는 정적분의 원리에 대해 언급하기도 하였다.

또한 파스칼의 삼각형에 대한 개념도 이미 깨닫고 있었음을 알 수 있었다. 이러한 수학실력은 삼국시대부터 꾸준히 쌓았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었다.

고대 우리나라의 수학의 역사를 연구하는 데는 김 부식의 삼국사기가 중요한 자료이다. 삼국사기에는 신라시대의 교육제도를 소상하게 기록하고 있는바, 682년 신문왕이 세운 국학이 그것이다. 그 후 경문왕이 이것을 대학감으로 고쳐 산학박사와 조교가 배치되었고 가르치는 과목은 철술, 구장, 삼개, 육장 등이 있었다고 한다. 이런 학문들은 대부분 중국을 통해 왔지만 삼개와 육장은 우리나라 고유의 학문이었다.

동양수학과 서양수학은 근본사상에서부터 그 차이점이 확실히 다르다. 기본적으로 동양은 음양사상이고 서양은 존재론적이다.

수학에 있어서도 동양은 대수학 중심이고 서양은 기하학 중심이었으며 수학이 기본 경향 역시 동양은 현실적인 문제를 다루고 있는 반면 서양은 논리적인 것을 다루고 있다. 물론 각각의 기본서적도 동양은 구장산술이 있다면 서양은 유클리드의 기하학 원본이 있다.

김인수<전북대 수학통계정보과학부 교수>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