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정한 국민과의 소통은 국정 쇄신
진정한 국민과의 소통은 국정 쇄신
  • 김은희
  • 승인 2008.05.27 14:2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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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 대통령이 최근 '쇠고기 파동'에 대해 사과하고 이례적으로 낮은 자세를 취했다. 하지만 들끓는 민심이 가라앉지 않고 있다. 적지 않은 시민들은 여전히 미국와의 쇠고기 합의를 규탄하는 촛불시위를 계속하고 있고, 야당은 정운천 농림수산식품부 장관 해임 건의안이 부결된 뒤에도 미국과의 재협상을 촉구하며 대정부 압박공세의 고삐를 늦추지 않을 태세이다.

사실 고유가와 물가상승, 국제 원자재 확보 경쟁 등 지금 우리 앞에 놓인 대내외적인 여건은 매우 힘겹다. 때문에 새 정부가 이 같은 어려움을 헤치고 우리네 살림살이를 넉넉하게 해주기를 바라는 마음은 국민 모두가 한결같다. 하지만 작금의 현실은 걱정스럽기 짝이 없다.

이는 무엇보다도 이명박 대통령이 자초한 점이 크다. 이 대통령은 '제대로 된' 대국민 사과를 통해 다시 신발끈을 고쳐맬 수 있었다. 하지만 국민과 소통부재는 인정하면서도 쇠고기 협상 과정의 문제점 등에 대한 진솔한 반성이나 언급을 하지 않았다. 물론 이 대통령은 "국정 초기의 부족한 점은 모두 저의 탓"이라며 모든 책임을 혼자 떠안고 가겠다는 뜻을 내비쳤다. 국정의 최고 책임자다운 모습으로 볼 수도 있지만, 야당은 물론 집권 한나라당에서조차 요구해 온 '인적쇄신'을 사실상 거부한 것이다.

쇠고기 파동은 광우병에 대한 근거 없는 이야기가 인터넷을 통해 퍼진 탓도 있지만 그 핵심은 미국과의 쇠고기 협상 과정 잘못에 있다고 봐야 한다. 마지노 선으로 지켜야 할 '국민건강권'에 대해 무신경했던 게 사태의 본질이다. 협상 잘못에 대한 반성과 책임소재 규명, 인적 쇄신 등이 함께 제시됐어야 마땅했다. 한마디로 국민들이 진정으로 바라는 후속 대책 마련에 소홀히 한 것이다.

취임 100일도 안된 이명박 대통령의 지지율이 20%대까지 떨어졌다. 임기초 대통령의 지지율로서는 상상하기 힘든 수준이다. 영어 몰입식 교육 추진, 각료 등 고위직 인사 파문, 대운하 추진과 같은 온갖 악재에도 불구하고 취임 초 70~80%를 유지하던 지지율이 20% 대까지 폭락한 것은 이제 대통령의 국정운영에 대한 국민의 인내심이 한계점에 도달하고 있다는 신호로 보기에 충분하다.

이 대통령은 해임안이 부결됐다 해서 이를 빌미로 어물쩍 넘어가려고 해서는 안된다. 정 장관에 대한 문책은 해임안 처리 여부와 관계없이 진작에 단행했어야 할 일이다. 정부가 스스로 정했던 개방 기준을 팽개친 채 국제기준에도 미치지 못하는 쇠고기 수입을 허용하고, 검역주권까지 미국에 넘겨준 협상을 한 주무 장관에게 책임을 묻지 않은 것이 오히려 이상하다.

또한 엉터리 협상을 한 관계자들도 엄중 문책해야 한다. 인물 교체로 새로운 진용이 꾸려지면 미국과 재협상에 나서야 한다. 이러한 최소한의 제스처도 없이 국민의 신뢰를 회복해 현재의 정치위기를 극복하려 한다면 '연목구어(緣木求魚)'나 다름없다.

집권 세력은 그동안 쇠고기 문제를 포함해 주요 정책 현안을 둘러싼 당정청 간 엇박자 행보로 국민의 불신을 키워 왔다. 이제는 인쇄쇄신이든 국정운영 방식의 변화든 뭔가 달라진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 이명박 정부에는 내각이 없다는 소리도 나온다. 대통령의 독주 탓도 있지만 현안을 처리하고 책임을 지는 장관이 없다는 이야기다.

여당도 상황은 별반 다를 게 없다. 청계천 촛불 시위 현장이나 탄핵 인터넷 사이트를 가득 메운 시민들의 자발적인 의사표시와 주장들에 대해 정치색을 덧씌우는데 급급해 하는 모습이다. 지난 10년 동안 높아진 국민의 눈높이를 대통령도, 집권 여당도 몰라도 너무 모른다는 느낌이다. 현실에 대한 인식과 감각을 준엄하게 재점검하지 않으면 안될 시점이다.

이번 쇠고기 파동에서 주목해야 할 또다른 포인트는 정부와 여당에 대한 '민심 이반' 현상이 뚜렷하게 나타나고 있지만 통합 민주당의 지지율은 회복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쇠고기 협상에 대한 국민의 분노를 등에 업고 야권을 규합해 해임안을 내놓았지만, 내부 균열로 스스로 무너져 내리는 한심함을 드러냈다.

야당의 무기력은 여권의 독선적인 정치행태를 더욱 부채질해 '대의 정치'의 위기를 부를 수도 있다. 민주당 등 야당이 제대로 된 견제 야당으로 거듭 태어나지 않으면 안되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 민주당은 수권 정당의 능력이 있는 지를 보여주기 위해 10년동안 집권 경험에서 쌓은 노하우를 토대로 경제 회생에 대한 대안을 제시하며 국민의 불안해소에 앞장서야 한다.

지금 국민들의 고통지수는 날로 높아가고 있다. 국정 운영시스템이 잘못됐으면 시스템을 바꾸고 사람이 잘못됐으면 사람을 바꿀 시점이다. 대통령은 자신의 사과가 국민들의 가슴에 진정으로 다가가기를 바란다면 구체적인 변화와 쇄신의 물증을 보여줘야 한다. 모든 것은 때가 있다. 실수 보다 더 무서운 것은 실기(失機)임을 잊지 말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김혁<농업인경영발전연구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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