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학은 원리탐구 도구
수학은 원리탐구 도구
  • 소인섭
  • 승인 2008.05.01 13:46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1960년대의 어느 날 영국의 옥스퍼드 대학의 수학자였던 머레이는 어린 딸에게 이야기책을 읽어주고 있었다.

그 이야기의 제목은 루드야드 키플링의 ‘표범의 얼룩무늬는 어떻게 생겨났을까’였다. 그런데 그 이유가 정말 궁금했던 딸아이가 물었다. “표범의 얼룩무늬는 진짜 어떻게 생겨난 거예요?” 머레이는 그 이유를 알지 못했고, 최고의 생물학자를 여럿 알고 있었으므로 곧 알아오겠노라고 약속했다.

그는 학교에서 생물학자들을 만나 물어보았다. 그렇지만 놀랍게도 그의 질문에 시원하게 답을 내놓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그가 만난 생물학자들은 동물 가죽의 알록달록한 천연색이 멜라닌이라는 화학물질 때문이며, 멜라닌은 피부 바로 밑에 있는 세포에서 생성된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렇지만 왜 얼룩무늬인가? 과학도 그 문제를 속 시원히 설명하지 못했다.

그 뒤 미국 시애틀의 워싱턴 대학으로 자리를 옮긴 머레이는 드디어 동물의 피부가 멜라닌을 생성하는 과정에 관한 수학적 모델을 개발했다. 이른바 반응/확산계에서 그 답을 찾은 것이다. 이렇듯, 화학이 그 답을 주지 못했던 표범의 얼룩무늬에 대한 답을 수학이 줄 수 있었다. 왜 호랑이 몸통은 줄무늬인데 표범은 얼룩무늬일까? 우주는 둥근가, 네모난가, 아니면 다른 어떤 모양인가? 올록볼록한 표면 덕분에 골프공이 하늘에 더 오래 떠있을 수 있는 이유는 무엇인가? 이른바 대중의 정서라는 것은 존재하는가? 만일 존재한다면, 우리는 그런 대중의 의향을 정확히 어떻게 파악할 수 있는가?

인간 정신의 도구들 가운데 우리를 둘러싼 세상에서 제기되는 이런 수많은 질문들에 답할 수 있는 힘과 재주를 갖춘 유일무이한 분야가 바로 수학이다.

수학은 단지 고리타분한 방정식과 증명들의 저장소가 아니라 생기 있고 창조적으로 세상을 사유하고 이해하는 방법을 다루는 학문이다. 세상에서 가장 어두운 대양의 심해에서부터 희미한 빛을 가냘프게 발산하는 저 멀리 은하의 세계에 이르기까지, 피겨 스케이팅 선수들의 공기역학적인 도약 기술에서부터 4차원 세계의 그림자들에 이르기까지, 수학은 이 세상과 그것의 작동 원리를 탐구할 수 있게 해주는 가장 강력한 도구이다.

또 비행기는 수학을 이용해 날고 항로를 찾는다. 병원은 수학을 이용해 설계한 장비들로 가득 차 있다. 그리고 약은 수학을 이용해 검증된다.

수학은 전화 시스템의 배후에 놓여 있으며, 텔레비전과 라디오, 그리고 시디플레이어의 한 구석에도 숨어 있다. 수학은 사람들이 가게에서 어떤 물건을 살지 판단하는 데도 사용되며 어떤 텔레비전 프로그램을 볼지 결정하는 데도 사용된다. 또 다른 수학의 산물인 컴퓨터는 어디에나 존재하며 우리 삶의 많은 부분에 커다란 영향을 미친다.

영화는 흔히 수학적 기법을 이용해 제작된다. 수학은 스포츠와 여가 활동에서도 점차 커다란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우리는 상상력이 만들어낸 참신한 아이디어와 통찰을 수학을 통해 받아들일 수 있고, 그것을 다른 사람과 공유할 수 있다.

우리가 수학책을 펼쳤을 때, 가장 당혹스러운 것은 온통 이상한 기호들로 가득 차 있다는 것이다. 수학이 우리 일상과 밀접하다면 왜 알 수 없는 기호들을 쓰는가? 그것은 수학자들이 연구하는 패턴이 추상적인 패턴이기 때문이다.

수학자가 다루는 추상적인 패턴은, 이를테면 세상 만물의 ‘뼈대’라고 할 수 있다. 수학자는 세상의 한 측면, 예를 들어 바이러스나 꽃이나 포커 게임을 보고 그것들이 갖는 특징을 끄집어낸 다음 나머지 구체적인 내용은 모두 버리고 바로 그 추상적인 뼈대만을 남겨놓는다.

바이러스의 경우, 남는 추상적인 패턴은 매듭의 패턴, 다시 말해 DNA 분자가 감겨 있는 방식이 될 것이다. 꽃의 경우에는 대칭의 패턴이 될 것이고, 포커 게임의 경우에는 카드의 분배나 돈 거는 패턴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런 추상적인 패턴을 연구하려면 마찬가지로 추상적인 표기법을 사용해야 한다. 그런 점에서 음악은 훌륭한 비유가 된다. 음악가는 음의 패턴을 기술하기 위해 추상적인 표기법을 사용한다.

그것은 음악을 들을 때 마음속에 생겨나는 매우 추상적인 패턴을 종이 위에 기술하고자 하기 때문이다. 동일한 가락을 피아노, 오보에, 플루트 등 여러 악기로 연주할 수 있다. 각각의 악기는 서로 다른 소리를 내지만 가락은 동일하다.

특정한 가락을 결정하고 그 가락을 다른 가락과 구분할 수 있게 해주는 것은 사용하는 악기가 아니라 바로 그 악기가 연주하는 악보의 패턴이다. 음악가가 음악 특유의 표기법을 사용해 종이 위에 옮겨놓은 것은 그런 추상적인 패턴이며 특정한 악기가 들려주는 특정한 소리가 아니다. 추상적인 패턴을 끄집어내기 위해선 음악가도 수학자처럼 추상적인 표기법이 필요한 것이다.

수학자가 수학적인 기호로 가득 찬 종이를 들여다볼 때, 그가 실제로 ‘보고’ 있는 것은 그 기호가 아니다. 그들은 수학의 기호들을 ‘통해’ 그 기호들이 나타내는 패턴을 직접 읽어낸다.

김인수<전북대 수학정보통계학과 교수>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