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론조사는 정답이 아닌 참고자료
여론조사는 정답이 아닌 참고자료
  • 황석규
  • 승인 2008.04.29 14:5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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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해 대통령 선거와 올해 국회의원 선거를 치르면서 유권자 뿐만 아니라 후보자 사이에서 가장 논란이 되었던 쟁점 중의 하나가 여론조사였다. 과거 만능으로 여겨졌던 여론조사가 이제는 무용론까지 나올 정도로 신뢰도를 잃어 급기야 지상파 방송은 여론조사를 바탕으로 한 예측보도에 대한 사과방송을 내보내는 지경에 이르렀다. 이를 단적으로 표현하는 이야기가 있다. 어떤 술 취한 사람이 가로등 불빛 아래만 돌아가며 잃어버린 열쇠를 찾고 있길래 여기서 열쇠를 잃어버렸냐고 물어보니 그냥 불빛이 있어서 여기만 둘러보고 있다는 어처구니 없는 대답을 했다고 한다. 즉, 잘못된 여론조사(불빛)는 민의를 반영하기는 커녕 유권자들로 하여금 잘못된 의사결정을 유도 할 수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우리나라 여론조사는 전화여론조사 방법을 사용하고 있는데 휴대폰이 아닌 가정집 전화를 이용한다. 하지만, 이는 세 가지 치명적 한계를 안고 있다. 첫째, 전 세계적으로 정보통신 강국으로 인정받고 있는 우리나라는 성인이라면 누구나 할 것 없이 휴대전화를 보유하여 집전화보다 사용빈도가 훨씬 높다.

시대흐름 반영하지 못한 방법

그럼에도 불구하고 집전화를 이용하는 여론조사는 노인, 가장, 주부, 학생 등 다양한 계층을 포함하지 않고 주부라는 특정계층을 대변하는 결과를 초래한다. 둘째, 집에서 여론조사에 응하는 사람들의 비율인 전화 응답율이 10%밖에 되지 않아 표본으로서의 객관성을 상실하고 있다. 다들 먹고살기 바쁜 시대에, 모르는 사람한테 걸려온 전화를 장시간 붙잡고 짜증나는 질문에 성실한 대답을 하는 사람들은 지극히 드물다. 따라서, 응답에 대한 신뢰성이 급격히 떨어진다. 셋째, 예전에는 전화가 중요한 재산임과 동시에 통신수단으로 전화번호부에 거의 모든 사람들이 번호를 등록하였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다. 통신비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전화는 휴대폰이고 집전화는 친척집이나 휴대전화가 통화중일 때 사용하고 있다. 그 결과, 현재 가정집 전화 등재율은 57%에 그치고 있다. 결국, 전화여론조사의 객관성이 없다해도 무방할 지경이다.

더욱 큰 문제는 정당내에서 경선의 경우 정책인식도가 낮고 후보가 부각되지 않은 경우, 인지도가 높은 사람이 이기는 불합리한 결과를 낳는다. 지금과 같은 방식의 여론조사에서는 대중적인 연예인이 절대적으로 유리하다. 그 다음으로 언론노출 빈도가 높은 현직 의원이 가장 큰 수혜를 입는 구조로 되어 있다.

우리나라는 세계에서 대만을 제외하고 유일하게 여론조사를 당내 경선에 반영하는 국가로 여론조사에 대한 비중이 매우 크다. 원래 국민들의 참여와 객관성을 높이고자 도입했던 여론조사 경선은 이번 국회의원 선거와 같이 후보들에 대한 정책과 도덕성 검증이 실종되고 선거운동하기도 빠듯한 상황에서 장점은 사라지고 폐해만 나타나 선거 후에도 후유증이 사라지지 않고 있다. 정책중심이 아닌 단순한 인지도를 보여주는 여론조사는 후보자의 과실을 덮어주는 면죄부 역할만 하였다.

당내경선에서의 민심왜곡

즉, 정책적 무능 또는 도덕적 의혹을 단순한 숫자로 대체하여 경쟁력있는 상대 후보를 단순히 인지도가 낮다는 이유로 경선에서 밀어내는 수단으로 활용하였다. 그러나, 현명한 국민들은 여론조사가 잘못되었음을 투표로 보여주어 이제는 이와 같은 일을 되풀이하지 말라고 경고하고 있다.

일기예보가 풍향이나 풍속에는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그러나 여론조사는 선거에 실질적인 영향을 미친다. 일단 여론조사를 발표하면 사람들은 이에 영향을 받지 않을 수 없다. 또한, 정치적 선거뿐만 아니라 여론조사를 악용하는 일이 횡횡하고 있다. 서울시 구의회가 의정비 인상을 전제로 동결이나 인하는 아예 항목에서 빼고 인상폭만 묻는 설문지 작성하여 통과시켜 국민들의 불만이 빗발치고 있는데서 알 수 있듯이 이제는 여론조사를 특정 개인이나 집단의 이익을 옹호하는데만 사용하지 말고 원래 목적과 취지에 맞게 객관성을 담보하는 방법론을 개선하여 의사결정시 참고자료로만 활용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황석규<전주시 생활체조 연합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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