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자율화, 냉정하게 생각하자
학교자율화, 냉정하게 생각하자
  • 한성천
  • 승인 2008.04.25 1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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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성천<문화교육부장>
‘자신의 욕망이나 남의 명령에 의존하지 아니하고, 스스로의 의지로 객관적인 도덕 법칙을 세워 이에 따르는 일.’

칸트 윤리학의 중심 개념인 ‘자율’에 대한 설명이다.

최근 우린 ‘자율’이란 단어를 매일 접하며 생활하고 있다. 단순하기만 한 이 단어가 우리나라 교육계를 들끓게 하고 있다. 더 나아가 양분시키는 극단적 현상마저 나타나고 있다. ‘자율’이란 남녀노소 할 것 없이 모든 이들이 좋아할진 데 말이다. 하지만 자율을 주면 안 된다고 아우성이다.

그 이유는 자율 이면에 ‘돈’과 ‘서열화’ 우려가 깔려 있을 것이란 짐작 탓이다. 자율이 오히려 배척당하고 있는 모습이다. 심지어 한 교원단체는 학교자율화로 사교육계가 1조 원의 금전적 혜택을 받을 것이란 주장마저 내놓았다.

어떤 근거로 1조 원을 제시했는지에 대해선 알 수 없지만 새정부가 교육정책 개선안으로 제시한 ‘학교자율화 추진계획’이 오히려 교육계를 혼란에 빠뜨리고 있다.

학교자율화는 중앙정부가 가지고 있던 통제권을 일선 광역교육청(도교육청)과 학교장에게 넘겨주겠다는 내용이 골자다. 또 지역교육청은 ‘지역교육지원센터’로 기능을 전환시켜 나간다는 것이다.

표피적으로 보면 쌍수를 들어 환영할 일이다. 그동안 중앙집중화의 폐해에 대해 개선해줄 것을 우리는 요구해왔다. 그러나 막상 자율을 주겠다고 하는데 교육분야 만큼은 자율을 줘서는 안 된다는 목소리가 더욱 높다. 아이러니한 일이다.

우리는 자율과 관련해 부화뇌동할 일이 아니다. 국가의 백년대계(百年大計)란 대의가 아니더라도 당장 내 아들과 딸의 미래와 직결되기 때문이다. 냉정을 되찾고 각 교육단체들의 주장을 정리해 볼 필요가 있다.

‘즉각 철회’를 주장하고 있는 전국교직원노동조합은 수준별 이동수업 지침은 ‘우열반 편성 확대’로, 학사지도 지침은 ‘0교시 수업 부활’로, 방과후학교 운영지침은 ‘사설학원의 학교 진출’로, 교복 공동구매 지침은 ‘대기업의 독과점 횡포’로, 촌지 안주고 안 받기 운동지침은 ‘불법찬조금 확산’으로 이어질 것으로 우려했다.

반면, 자유교원조합은 학교 현장에서 방과후학교에 외부 유명강사를 초빙하는 것이 두려우면 조속히 ‘교원평가’와 ‘교원성과급’을 실시해 교사도 무한경쟁체제를 통해 실력 있는 교사로 거듭나야 한다고 일침을 놓았다. 또 학교는 그동안 관치교육의 선전장으로 휘둘려 각종 규제와 감시 속에 ‘하향 평준화시대’를 맞고, 암흑교육의 연속이었다고 지적했다. 따라서 일반화된 사교육을 학교 안으로 흡수하여 국민의 열망과 공교육의 신뢰를 회복시켜 나가기 위해선 자율화가 필요하다는 주장을 내놓았다.

뉴라이트학부모연합도 학교자율화 추진계획에 대해 환영 의사를 표명하면서도 사설학원의 방과후학교 참여에 대해서는 대기업이 아닌 비영리기관에 위탁, 운영하는 안을 조건부로 제시했다.

각 단체들의 주장은 나름의 논리와 설득력을 가지고 있다.

문제는 교과부가 국민적 합의과정을 거치지 않고 일방적으로 가장 예민한 교육정책을 불쑥 내놓았다는 점에서 아쉬움이 남는다.

‘내가 옳고, 네가 틀리다’는 식의 자기주장만 강조할 때가 아니다. ‘자율’의 본질과 개념, 그리고 현실사회에서 어떻게 운영하는 것이 현명한 일인지, 또 학교자율화가 국민으로부터 신뢰를 잃어가고 있는 공교육을 살릴 방법인지에 대해 국민적 지혜를 모아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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