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계와 수학
금융계와 수학
  • 송영석
  • 승인 2008.04.17 14: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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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동아일보 동아경제 전면에 ‘은행으로 간 수학자들’이란 제목의 글이 게제 되었다. 내용인즉, 은행의 고객관리를 수학적인 기법을 이용해 고객관리를 한다는 이야기이다. 실제로 하나은행, 국민은행, 신한은행 등 국내의 간판 금융기관들과 삼성증권, 한화증권 같은 증권회사에서는 선진국에서 수학을 연구한 박사들을 채용하여 마케팅과 상품 거래분야를 넓혀 가고 있다는 것이다. 최근 각종 파생상품에 대한 수요가 늘면서 금융회사에 취직하는 수학자들이 부쩍 늘고 있다. 금융계에 취업한 수학자들은 주로 파생상품 설계 업무를 맡는 퀀트(Quantitative의 줄임말로, 파생상품 설계 전문가를 뜻함)로 일한다. 현재 한국의 금융회사별로 퀀트 업무를 맡는 수학 전공자들은 평균 3∼4명, 업계 전체로는 박사 학위 소지자만 50여 명 정도로 추산된다. 금융회사들이 수학자들을 고용하는 이유는 현장 경험과 단순한 복리계산만으로 설계하기 힘든 금융상품이 대폭 늘어났기 때문이다.

미국 뉴욕주립 대학에서 응용수학 박사 학위를 받고 현지 아멕스카드에서 고객 분석 업무를 하던 양 현미 본부장은 수학자라는 점 때문에 은행에 특채된 케이스이다. 지난해 4월 신한은행에 입행한 양 본부장은 이 은행의 마케팅 기법을 바꿔 놓았다. 이전까지 은행의 전화 마케팅은 직장인 가운데 신용이 좋은데 대출을 받은 적이 없는 고객들을 추린 뒤 열심히 전화를 돌리는 것이었다. 양 본부장이 도입한 ‘고객 행동유형 분석모델’ 프로그램은 회귀분석이라는 수학적 기법을 이용해 고객의 입출금 거래 명세와 평균잔액 등을 분석한 결과를 토대로 특정 시점에 대출이 필요할 것으로 추정되는 고객들을 뽑아내는 방식이다. 그 결과 1∼2%에 불과했던 이 은행의 대출 안내전화 성공률은 1년 만에 13%로 올랐다고 한다. 최근 각 금융회사에서 경쟁적으로 내놓고 있는 주가지수연계증권(ELS)이 수학자들의 손을 거쳐 만들어진 대표적인 파생금융상품이다. 특정 시점에서 주가의 변동에 따라 수익률이 매겨지기 때문에 다양한 조건에 따른 확률을 계산해야 한다.

미국에서는 1980년대 말부터 수학자들이 월스트리트로 진출해 금융계의 최고 엘리트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르네상스 테크놀로지라는 헤지 펀드를 운용하며 2006년 15억 달러(약 1조4700억 원)의 연봉을 받은 제임스 시몬스 씨가 대표적인 퀀트다. 그는 하루 40억 원을 번 셈이다. 그는 매사추세츠공대(MIT)와 버클리 대학에서 수학을 전공하고 하버드대와 MIT에서 수학과 교수로 일하다가 금융계에 뛰어들었다. 그가 수학자, 천문학자들을 모아 1989년 만든‘메달리온 펀드’는 연간 평균수익률 30%가 넘는 놀라운 성과를 내왔다. 한국의 퀀트들은 요즘 파생상품 설계 등의 분야뿐 아니라 마케팅, 상품 거래 등으로 분야를 넓혀 가고 있다. 서울대 수학과 석사과정을 마친 국민은행 트레이딩 부서의 임 현철팀장은 선물 옵션 상품 설계와 거래를 함께 맡고 있다고 한다.

수학자들이 금융회사로 진입하면서 업무 방식에도 많은 변화가 나타나고 있다. 각종 회의나 업무 협의에서는 말이 아니라 수식과 데이터가 판단의 근거로 등장한 것이다. 응용수학 박사인 신한은행 강 병국 금융공학센터과장은 말이나 글이 아니라 수식만으로 설명하는 것은 수학자들이 글 쓰는 데 익숙하지 않은 탓도 있다고 말했다.

이공계 취업난도 이들을 금융회사로 끌어들이는 데 한몫을 하고 있다. 이공계 출신이 주로 취업하는 다른 직장에 비해 금융회사의 처우가 좀 나은 편이다. 하지만 수학자들이 수학 이론뿐 아니라 금융 시장에 대한 현실적인 감각을 먼저 익혀야 한다는 자성도 나온다. 왜냐하면, 복잡한 수식을 통해 도출한 결론이 현업에서 감으로 짚어낸 것보다 떨어질 때도 적지 않기 때문이다. 지금은 수학을 경제에 실제로 어떻게 적용할지 고민하는 노력이 필요하며 금융수학이나 금융공학 같은 전문 프로그램이 좀 더 확대돼야 한다. 현재 우리나라에서는 KAIST와 많은 대학에서 이런 성격의 학위과정을 운영을 시도하고 있다.

김인수<전북대 수학통계정보과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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