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구조사를 왜 하는가?
출구조사를 왜 하는가?
  • 김흥주
  • 승인 2008.04.11 14: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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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나 선거일이면 각 방송사마다, 정당마다, 후보자마다 투표가 마감되는 오후 6시를 전후해 난리가 난다. 심지어 우주선을 쏘아 올리듯 카운트다운까지 하면서 6시 땡을 기다린다. 출구조사 발표 때문이다. 그리고 그 결과에 따라 환호하기도 하고 절망하기도 한다. 이번에도 예외는 아니었다.

너무나 거창하게 조사결과를 발표하고 진심으로 신뢰하고 있기에 이번에는 ‘혹시나’ 했다. 하지만 결과는 ‘역시나’였다. 이번 18대 총선에서도 각 방송사들의 출구조사는 과학적 예측조사라고 하기에는 창피할 정도로 또 다시 빛나갔다. 각 방송사들이 출구조사를 통해 발표한 예측과 실제 개표결과가 달랐던 지역은 KBSㆍMBC 공동조사는 20곳, SBS는 29곳이었다. 방송사들은 공통적으로 여당인 한나라당 의석수를 20여 석 많게 예측한 반면, 다른 정당이나 무소속 후보의 예상 의석수는 적을 것으로 발표했다.

지역별로는 영남권에서 상식을 뛰어넘는 오류가 많았다. 경북 경주에서는 친박연대 김일윤 후보가 한나라당 정종복 후보에게 약 15%포인트나 뒤질 것으로 예측했지만 결과는 김 후보의 승리였다. 경남 사천도 한나라당 이방호 후보가 민주노동당 강기갑 후보에게 10%포인트 이상 앞선 것으로 발표됐지만 개표 결과는 반대였다. 오차 범위도 뛰어넘는 이러한 오류는 단순한 실수이기 보다는 조사설계의 문제이자 방법상의 문제로 보아야 한다.

더 큰 문제가 된 것은 출구조사 결과를 바탕으로 각 방송사들이 소위 말하는 예측시스템을 가동시킨 것이다. 그래서 개표률이 5%도 채 되지 않은 상태에서 출구조사 비율과 유사하게 나오면, 당선 유력이니, 확실시니 하는 너무나 무모한 예측을 남발하였다. 출구조사에 대한 신뢰가 이정도면 가히 광신이라 할만하다.

자극적인 것, 속도감 있는 것을 추구하는 방송사에게 출구조사는 상당히 매력적인 일이다. 더구나 지난 1997년 김대중 대통령의 당선을 1%포인트 이내에서 적중한(?) 사실을 두고 전 세계 여론조사기관이 경악했던 사실을 기억하는 방송사들은 한 시라도 빨리 시청자들에게 결과를 알려주고, 자신들의 과학성을 과시하고 싶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나라 출구조사의 역사를 보면 참혹 그 자체이다.

1996년 15대 총선 당시, 4대 방송사 합동 투표자 여론조사(당시는 출구조사가 허용되지 않았다) 결과는 신한국당 175석 압승으로 발표되었다. 그러나 결과는 139석으로 과반수도 넘지 못했다. 출구조사가 본격적으로 허용된 2000년 16대 총선과 2004년 17대 총선 결과도 마찬가지였다. 이에 따라 많은 시민들은 “차라리 점을 보는 게 낫겠다”, “비싼 돈을 들여 왜 하는지 모르겠다”라고 비아냥거리기까지 하였다.

그렇다면 왜 출구조사는 틀리는가?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대선과는 다른 총선만의 특징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여러 시군구의 복합 선거구가 많은 총선에서는 무엇보다 정확한 표집설계와 응답성향에 대한 다중 분석, 감춰진 표심을 찾아내기 위한 과학적 조사기법의 개발 등이 필요하다. 그러나 지금의 출구조사는 표집 단위만 다를 뿐, 대선과 동일하게 출구조사를 하기 때문에 지역, 쟁점, 지지성향, 응답성향 등이 충분하게 고려된 결과를 찾아내지 못하고 있다. 여기에다 여론조사기관의 난립으로 조사에 필요한 적정 비용을 들이지 않고 ‘싼 것’만 찾다 보니 짝퉁 결과만 나오고 있다. 싼 가격으로 짧은 시간에 무리하게 진행된 조사 결과는 결국 부실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방송사들은 왜 출구조사에 집착하는가? 명문은 국민들의 알 권리 충족이지만 속내는 속보경쟁이다. 방송의 생명은 속도라고 하이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정확함이다. 시민들은 정확한 사실을 알고자 하는 것이지, 틀린 사실을 단지 ‘빨리’ 알고자 하는 것은 아니다. 출구조사가 속보 경쟁과 자극적 방송의 수단이 되어서는 안된다는 의미다.

과거에는 개표가 수작업으로 진행되었기 때문에, 밤을 새워 결과를 기다리는 시민들에게 출구조사는 방송사들이 제공하는 최대의 서비스가 될 수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전자개표 방식이기 때문에 3~4시간 정도면 결과를 정확히 알 수 있다. 굳이 비싼 비용을 들여 출구조사를 할 필요가 없다는 이야기다. 그럼에도 출구조사를 통해 순위를 발표하고, 결과를 예측할 욕심이 있다면 설계와 절차를 정확히 하고, 적정 비용을 들여, 제대로 된 조사를 해야 한다.

김흥주 (원광대 복지보건학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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