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 함부로 말하지 말라
교육, 함부로 말하지 말라
  • 이용숙
  • 승인 2008.03.26 17:3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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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의 사적인 얘기를 늘어놓으려니 쑥스럽다. 나는 어려서부터 교사가 되려는 꿈 하나로 60년을 살아왔다. 초등학교에 입학하기 전 다섯 살 때에 조부님 슬하에서 한문교육에 입문했다. 할아버님께서 돌아가신 뒤에는 자연스럽게 선친께서 경영하신 전통서당에서 글을 읽었다. 이는 중학교를 졸업할 무렵까지 이어졌는데, 천자문부터 사자소학, 동몽선습, 명심보감, 효경, 소학, 통감을 거쳐 4서를 읽었다. 어디까지나 학교 공부는 뒷전이었고, 서당교육이 주된 과업이었다. 할아버님과 아버님의 가르침 속에서 장래의 꿈은 당연히 교직 하나로 집약된 것이다.

고등학교 진학 목표는 당시 초등교사 양성기관인 사범학교였다. 그런데 졸업 한두 해 전에 이 제도가 폐지되고 교육대학으로 전환되어, 별 도리 없이 인문계 고교에 진학하여 다시 사범대학 진학을 목표로 3년을 생활했다. 오직 선생님이 되겠다는 일념으로 말이다. 다행히 계획대로 사범대학을 마치고 교단에 첫발을 내디딘 것이 1969년 새 봄. 이제 교단생활 꼭 40년에 접어든 것이다. 그런 가운데 교육학을 공부하여 교육학 석사와 그 다음 학위를 취득했고, 지금은 초등 교원 양성 기관인 교육대학교에서 20년 넘게 봉직하고 있다.

돌아보면 부끄럽기 한이 없다. 더구나 아직도 교육이 무엇이며, 무엇을 가르치고, 어떻게 지도해야 하는지 아는 것이 없다. 한편, 내 주변에 교육에 무관심한 사람은 한 사람도 없는 성싶다. 전 국민이 교육전문가인 것처럼 주장들이 당당하다.

크고 작은 공·사석에서 교육의 현안이 화제에 오르면, 처음에는 교직에 있는 필자에게 의견을 물어온다. 나름대로 소견을 피력하면 곧바로 자신의 주장을 펼치며 반박이다. 동조하는 경우는 극히 드물고, 그래서 그때마다 곤혹스럽기까지 하다.

누구나 다 교육전문가인가?

그 정도야 뭐 나무랄 일인가. 교육이 교단의 전유물이 아니고 사회와 국가가 함께 이끌어가야 할 과제이니, 국민 모두가 관심을 갖는 일이 잘못이랄 수는 없다. 흔히 OECD국가 중 교육열 1위라는 현실을 실감할 수 있다. 그러나 그 정도가 지나친 것만은 자못 안타까운 심정이다. 사공이 많으면 배가 산으로 간다고 했던가.

교육을 일컬어 백년지대계라 한다. 지당한 말이다. 한 나라와 겨레의 흥망성쇠가 교육에 기초하고 있음은 두말할 나위도 없다. 지난 세계의 모든 역사가 명징하게 증언하고 있다. 백 년 앞의 큰 계획, 그러니 그 폐단을 수술하고 바로잡는 일도 시급하지만, 새로운 개혁의 방향을 설정하는 일에는 더욱 신중을 기해야 한다.

전 국민에게 초미의 관심사인 대입 전형 하나만 해도 얼마나 어지럽게 뒤바뀌었는가. 예비고사에서 학력고사를 거쳐 현재의 수학능력시험까지 무슨 변덕이 그리도 심한가. 점수제에서 등급제로, 그것도 시행 한 해만에 등급제 폐지. 학생과 학부모는 어느 장단에 춤을 추어야 할지. 어린 수험생에게 운명의 장난을 그런 식으로 깨우쳐 주어도 되는가. 학생부에 힘써야 할지, 논술에 주력해야 할지……. 누가 무슨 자격으로 저들을 질곡으로 몰아넣고 있는가, 함께 반성해야 할 일이다.

느닷없는 진단평가와 새 정부 출범을 전후하여 등장한 영어몰입교육. 그것도 교육용어가 될 수 있는가. 참 어지럽다. 교육이 정치논리에 휘둘리는 현실이 안타깝다. 현실적으로 정치적 효과가 가장 큰 영역이 교육임에는 이론의 여지가 없다. 그렇다고 정권이 바뀌고 교육부 수장이 교체될 때마다 전 국민은 그 놀음에 휘둘려도 좋은가.


제발 백년대계이며 조국의 명운이 걸린 교육을 함부로 휘두르지 말라. 정권이 바뀌어도 체제가 변해도, 교육만은 교육 전문가 집단에게 맡겨라. 면밀히 검토하고 충분한 시간을 가지고 여론을 수렴하며 백 년이 아니면 몇 십 년이라도 흔들리지 아니할 정책을 수립하고 시행해야 한다.

교육은 교육전문가에게

오렌지를 ‘어륀지’라 해야 하고, 같은 맥락에서 ‘바이타민’이나 ‘피애노우’가 보다 정확한 발음이라 하는가. 그런 문제는 당연히 언어정책 전문기관에서 논의하고 검토할 일이다. 힘깨나 있는 인사라고 해서 함부로 파장을 일으켜서는 온당하지 않다. 오죽하면 ‘어륀지’가 개그 프로의 단골 메뉴가 되었으랴.

덧붙여 교단 40년을 돌아본다. 교육의 참다운 주체는 학생과 국민이지만, 그 핵심에는 항상 학교와 교사가 있음을 망각해서는 안 된다. 교사가 긍지와 존엄을 잃었을 때 그들에게 지도받는 우리 아이들이 어떤 모습으로 자라날 것인가. 오늘도 일선 교단에서 묵묵히 소명을 다하는 참교사의 공로 또한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교육, 그 백년대계를 위하여.

이용숙<전주교육대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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