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질서 확립과 비정규직
법질서 확립과 비정규직
  • 김남규
  • 승인 2008.03.21 15: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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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정부가 들어서면 ‘법질서 확립’을 주창하는 것이 한 두번이 아니기에 이번에도 그러거니 했다. 그러나 이번은 정도가 좀 다르다. 어청수 경찰청장은 대통령의 ‘법질서 유지’ ‘국가기강 학립’ 방침에 충실하게 ‘쾌적한 생활환경 시작은 기초질서’라는 현수막을 청사에 내걸었다. 그리고 기초질서 확립 방침이 서서히 위력을 발휘하고 있다.

자진 철거 의사를 밝혔던 ‘코스콤 비정규직 노동자의 거리 농성장’을 강제로 철거하는가하면, 이제까지 문제없이 진행되었던 검찰정 앞 기자 회견이 불법 시위로 규정하여 전북지역에서 기자회견에 참석한 사람들을 소환 조사하였고, 다른 지역도 이와 같은 사례가 나타나기 시작 하였다. 한나라당과 정부에서는 불법·폭력 시위 단체에게 보조금을 지급하지 말라는 목소리도 높아졌다. 이러한 분위기에서 최근 각 지역별로 ‘치안협의회’가 발족되었고, 서울지방경찰청의 ‘불법시위자를 체포하기 위한 전담 체포조’를 만들겠다는 이야기를 들으면서 등골이 오싹해지는 느낌이다.

고위층 부정·부패 일소해야

경찰이 기초질서를 확립하고 불법을 단속한다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다. 또한 민·관협력위원회를 구축하여 이를 도모하는 것을 비난 할 일이 아니다. 그러나 ‘기초질서 확립’ 방안이라는 게 각 기관장과 일부 단체가 참여하는 ‘치안협의회’를 구성하여 켐페인을 벌이는 것으로 생각한다면 구태의 행정이라는 비난을 면하기 어려울 것이다. 이제까지 기초질서가 확립되지 않은 이유가 위원회가 없어서 안 된 것이 아니다.

이미 교통질서확립추진위원회, 선진질서추진위원회 등 많은 위원회가 있다. 기초질서를 확립하기 위해서는 밤새 민원인들에게 시달리는 일선 경찰 인원을 보강하고 주민들에게 민생·치안서비스를 강화하는 일일 것이다. 또한 ‘유전무죄’ ‘무전유죄’라는 사회적 피해의식을 없앨 정도의 사회 고위층에 대한 부정·부패를 일소하여 시민들이 ‘기초 질서 확립’을 당연하고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도록 하는 것이 우선일 것이다.

‘치안협의회’ 발족과 ‘불법시위자 전담 체포조’는 과거 시국 사건이 있을 때마다 열렸던 ‘관계기관대책회의’와 ‘형사기동대-일병 백골단’을 연상 시킨다. 물론 그렇게 되어서도 안 되고 되지 않을 것으로 본다. 그러나 한·미 FTA 비준과 올 7월부터 확대 시행될 비정규직 보호법(100인 이상~300인 이하 사업장) 앞두고 자꾸 불길한 생각이 든다. 새 정부가 외치고 있는 법질서 확립이라는 게 비정규직 노동자와 농민들을 향한 수순 밟기가 아니길 바란다.

갈등 해결위해 충분한 노력을

정부는 시민들에게 ‘기초 질서’를 말하기 전에 정부에 의해 저질러지는 ‘폭력’에 대해서도 생각해보아야 한다. 각종 개발 사업을 추진 할 때 시행하는 ‘토지 수용제도’로 다수의 이익을 위해 희생되어야 하는 소수의 권리를 묵살하고 있지는 않는지, 비정규직을 보호하지 못하는 비정규직 보호법에 의해 거리로 쫓겨나 생존권을 주장하는 이들의 집회와 시위의 자유를 빼앗고 있지 않는지 말이다. 새 정부는 노무현 정부가 평택 미군기지 이전 문제로 주민들에게 가했던 폭력을 되풀이하지 않기를 바란다. 갈등이 폭력으로 전환되기 전에 갈등을 조정하고 해결하기 위한 충분한 노력이 있어야 한다. 정부는 갈등의 책임을 국민들에만 돌려서는 안 된다.

김남규(참여자치전북시민연대 사무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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