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묻지 마’ 살인인가 ?
왜 ‘묻지 마’ 살인인가 ?
  • 김흥주
  • 승인 2008.03.17 17: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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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12월 실종된 안양 초등학교 어린이의 시신이 발견된 지 5일 만에 유력한 살해용의자가 검거되면서 사회 전체가 충격에 휩싸여 있다. 아직 실종된 다른 어린이의 행방을 알 지 못하기 때문에 실낱같은 희망을 안고 있지만, 용의자가 아이들과 전혀 연관이 없는 이웃이었다는 점에서 또 다시 ‘묻지 마’ 살인에 대한 공포가 사회를 뒤덮고 있는 것이다.

‘묻지 마’ 살인은 불특정 다수에 대해 전혀 연고가 없는 사람이 아무 이유 없이 살인을 저지른다는 점에서, 이상심리에 의한 연쇄살인과 함께 현대사회의 물신화된 사회관계를 가장 잘 보여주는 폭력행위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맹목적 살인이 현대사회에서 끊이지 않는 이유에 대해서는 다음 세 가지 해석이 가능하다.

첫째, 독일의 사회학자 울리히 벡이 지적한 ‘위험사회’의 결과에 따른 것이다. 현대사회의 위험은 전쟁이나 재해와 같은 구조적 위험뿐만 아니라 각종 범죄와 질병 등 일상의 위험까지 전지구적 차원으로 확산되어 있다. 특정한 상황의 위험이 아니라 일상화된 위험이며, 모든 사람이 이런 위험에서 벗어나기란 쉽지가 않다. 이런 위험사회는 개발중심ㆍ기술중심의 파괴적 근대성이 가져온 당연한 결과다.

둘째, 자본주의가 심화되면서 모든 인간관계가 화폐관계로 변하면서 나타나는 현상이다. 화폐관계 속에서 인간의 존엄성은 크게 훼손될 수밖에 없다. 인간은 소중한 생명이기 보다 물질로 파악되며, 이러한 ‘인간 물질’은 언제든지 버릴 수도, 파괴할 수도 있는 것으로 취급된다. 인륜을 저버린 존속살인이나, 사이버 게임과 같은 무차별 살인이 이러한 상황에서 너무나 태연하게 저질러지고 있는 것이다.

셋째, 우리 사회의 지나친 이중성과 폐쇄성이 만들어낸 사회적 소외자의 적대적 증오심을 어루만져줄 사회통합장치가 부족한 데에 따른 것이다. 가정과 학교의 괴리, 도덕과 일상의 어긋남, 권력가와 가진 자의 오만과 편견, 학연과 계층에 따른 사회적 폐쇄는 수많은 사람들을 절망의 나락으로 몰아넣는다. 이 때문에 적대적 증오는 거리를 휩쓸며, 묻지 마 살인이 마치 게임처럼 이루어진다.

서구의 복지선진국은 이러한 인간소외나 사회통합의 위기를 새로운 사회적 위험(new social risk)으로 간주하고, 이에 대한 대책마련에 부심하고 있다. 빈곤이나 실업, 질병과 같은 오래된 사회적 위험(old social risk)의 해결도 중요하지만, 근대성이 파괴해놓은 공동체와 인간성의 복원 또한 중요하다는 사회적 합의도 이루어져 있다. 특징적인 것은 불특정 다수에 대한 적대적 증오와 공격적 행위를 개인차원의 이상심리나 일탈행위 문제로 파악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차원의 구조적 문제로 인식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래서 이들 국가는 이러한 사회적 위험을 해소하기 위해 성찰적 근대성을 바탕으로 새롭게 복지체제를 정비하고, 더불어 같이 살아가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 모두가 노력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사회는 어떠한 가? 이번 사건에서도 나타나듯이 차분한 대응보다 살인자 개인에 대한 광적인 분노가 언제나 우선이다. 다음은 치안을 챙기지 못한 경찰에 대한 분노로 이어지고, 내 아이부터 챙기기 위해 학교로, 학원으로 달려간다. 참으로 희한한 한국적 분노이자 한국적 가족이기주의의 모습들이다.

‘한국적 분노’의 특징은 대상이 사회나 국가보다 살인자 개인에게만 집중된다는 점이다. 이에 따라 분노의 결과도 개인차원의 징벌에 그칠 뿐, 사회적이고 제도적인 보완을 해나가는 데에는 미숙하다. ‘한국적 가족주의’ 또한 사회 안전보다 가족 안전을 우선시한다. 그래서 우리 아이만 잘 있으면, 다른 아이들이 어떠한 처지이든 그다지 관심이 없다. 이런 사회에서는 안전에 대한 사회적 욕구가 부족하기 때문에 적대적 증오와 맹목적 살인이 지속될 수밖에 없으며, 제도적 대응장치의 마련도 쉽지가 않다.

이제는 차분하게 우리가 해야 할 일을 찾아보는 것이 중요하다. 우선은 치안이나 교육 등 아이들을 일차적으로 보호할 수 있는 장치를 새롭게 정비해야 한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불특정 다수를 위한 범죄행위는 사회구성원 모두가 두려움을 느끼는, 그래서 제도적으로 해결해야 하는 사회적 위험임을 인식하는 일이다. 국가가, 사회가 나서서 사회적 약자에 대한 편견과 차별이 없는 사회통합을 지향할 때, 그리고 더불어 같이 사는 사회안전망을 사회적 합의에 의해 만들어갈 때만이 사회에 만연한 적대적 증오와 광기가 희석될 수 있다. 묻지 마 살인은 이러한 점에서 사회적 살인이라고도 할 수 있다. 사회적 살인은 사회적으로 해결해야 한다.

김흥주 (원광대 복지보건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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