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호 "배우의 꿈, 절반은 이뤘다"
김영호 "배우의 꿈, 절반은 이뤘다"
  • 박공숙
  • 승인 2008.02.24 13:1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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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상수 감독의 영화 ‘밤과 낮’의 소심한 주인공성남은 재미삼아 대마초를 피운 일이 들통나자 당장 경찰을 피해 프랑스 파리로 도망가 몇 달 동안 돌아오지 않는다.

이런 성남의 옷을 입은 배우 김영호에게서 드라마 ‘서동요’의 부여선이나 ‘야인시대’의 이정재 같은 위풍당당한 모습은 찾아볼 수 없다. 그렇다고 집 밖에선 능력 있지만 집안에선 권위만 내세우는 ‘두 번째 프러포즈’의 민석과 썩 닮은 것도 아니다.

성남은 밤마다 한국에 있는 아내와 통화하며 자신의 불행을 한탄하고 머리를 쥐어뜯지만 대낮엔 언제 그랬느냐는 듯이 예쁜 여대생들의 꽁무니를 졸졸 쫓아다니는 철없는 남자다.

개봉(28일)을 앞두고 인터뷰를 위해 만난 그는 당당한 풍채에 시원시원한 말투까지 성남의 흔적을 전혀 내비치지 않았다. 다만 ‘밤과 낮’과 홍 감독에 대한 그의 애정만은 굳이 말로 표현하지 않아도 눈빛에서 고스란히 새어나왔다.

국내외를 오가는 빡빡한 스케줄에도 진심으로 즐거워 보인다는 인사말을 건네자그는 바로 “네, 좋아요, 정말 좋습니다”라고 답했다.

“촬영할 때 감독님이 괜찮다고 해도 제가 마음에 안 들면 다시 하겠다고 했어요.

시간이 아무리 오래 걸려도 마음에 찰 때까지 찍고 또 찍었습니다. 감독님도 받아주셨고요. 감독님은 저한테 ‘무조건 네가 최고’라고 하셨죠. ‘너만큼 호흡이 잘 맞는 배우가 없었다, 무조건 네가 제일 잘하고 있다’라고요. 그래서 해낼 수 있었을 겁니다.”

홍 감독의 영화 속 남자 주인공들은 모두 하나의 뿌리에서 자라난 홍 감독만의 페르소나다. 그 때문에 그의 영화는 일상과 생활의 재발견인 동시에 남자 배우의 재발견이기도 하다. 늦은 나이에 데뷔해 스크린과 브라운관에서 주연급으로 활약해 왔지만 스타 배우라고 하긴 어려웠던 김영호 역시 눈을 다시 비비고 볼 만한 새로운 모습을 선보인다.

“파리 촬영에 들어가기 전 한 달 넘게 아무것도 안 하고 집에서 혼자 틀어박혀 있었어요. 성남은 외로운 사람이어야 할 것 같았거든요. 연기가 아니라 성품과 감정이 중요한 거라고, 완전히 성남이 돼야 한다고 생각했죠. 그리고 실제로 촬영에 들어가선 재미있는 부분부분을 잘 살리는 데 중점을 뒀습니다.”

홍 감독은 사전에 완성된 시나리오 없이 촬영에 들어가 그날그날 ‘쪽대본’을 주는 것으로 유명하다. 어느 배우에게나 쪽대본은 어려운 법이다. 그는 “기승전결이 분명한 평범한 영화가 아니니 물론 어려웠다”면서도 “감독님이 다음에 영화 또 같이하자고 했다”고 자랑하듯 말했다.

“아무것도 안 주세요. 파리에 가기 전에 시나리오 한번 못 봤죠. 물론 촬영 들어가기 전 감독님과 세 달 정도 계속 얘기를 나누긴 했어요. 감독님이 ‘아무것도 준비할 것 없다, 너처럼 사는 게 성남이다’라고 하시더군요. 나중에 촬영을 하면서도 말투나 대사에 제 모습이 많이 들어갔어요.”

그는 이달 독일에서 열린 베를린 국제영화제에서 레드카펫을 밟았다. 한국영화로는 유일하게 장편 경쟁부문에 진출한 ‘밤과 낮’은 아쉽게도 수상에는 실패했다. 그러나 그는 홍 감독이 ‘정말 소중한 감독으로 대접받고 있다’는 뿌듯함을 느꼈다.

“세계적인 영화제에서 레드카펫을 밟았으니 배우의 꿈을 절반은 이룬 거죠. 나머지 절반이요? 아, 거기서 상까지 받는 거죠(웃음).”

비록 상은 받지 못했지만 그는 국내외 언론에서 생각지도 못했던 큰 관심을 받았다. 서른 살을 넘겨 영화에 데뷔한 배우 김영호에게 이번 배역이 큰 전환점이라는사실만은 분명해 보인다. 지금까지의 연기 생활이 마음에 차는지, 앞으로 남은 일은무엇이라고 생각하는지 물었다.

“제가 원래는 음악을 했고 지금도 하고 있어요. 지풍우라는 밴드에서 활동 중입니다. 음악이 연기의 기본 소양을 마련해 줬죠. 그래서 제가 연기를 음악하듯이 몰입해서 하는 것 같습니다. 음악과 연기는 사실 다르지 않거든요. 그리고 세상에 비슷한 사람이 하나도 없잖아요. 이제까지 다양한 역을 맡긴 했지만 그래도 아직 많이남아 있어요. 죽을 때까지 또 다른 사람을 연기하고 싶어요.”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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