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벌공화국 대한민국
학벌공화국 대한민국
  • 김흥주
  • 승인 2008.02.15 14: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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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새로운 이명박 정부가 구성되기 시작하면서 학벌문제가 사회적 관심으로 떠오르고 있다. 노무현 정부에서는 서울대 망국론까지 등장하면서 주변 세력이었던 지방대, 여성, 호남이 권력의 중심에 접근할 수 있었다. 그러나 이번 이명박 정부의 인선과정을 보면 철저하게 최고 엘리트 중심의 권력지도가 만들어지고 있는 듯하다. ‘일류대, 남성, 서울’이 다시 권력의 중심으로 당당하게 되돌아온 것이다.

사정이 이러하니, 우리 사회 전반에 그동안 조금은 약화되었던 일류대 지상주의가 다시 되살아나고 있다. 여기에다 사상 최악의 청년실업 사태까지 겹치면서 “어떠한 희생을 치루더라도 대학은 잘 들어가야 한다”는 강박감이 학생을, 학부모를 짓누르고 있다. 학벌공화국 대한민국의 화려한 부활이다.

학벌에 대한 우리 사회의 집착을 보면 처절하기까지 하다. 일류대에 진입하기 위한 학생들의 사교육비는 가히 천문학적이다. 대학입시에 실패해서 보다는 좋은 대학에 들어가기 위해서 기꺼이 재수, 삼수를 한다. 고3 학생을 위한 가족의 희생은 세계에서 찾아보기 힘든 학생 중심의 ‘고3가족’을 만들어낸다. 실업계 특성화 학교에서도 95% 이상은 대학진학을 위해 입시공부를 한다. 대학에 들어가서도 보다 나은 대학으로 이동하기 위해 편입시험에 목을 맨다. 심지어 학력을 위조해서라도 좋은 학벌을 가지려 한다.

어느 사회나 학력에 의한 사회적 보상의 차이는 있다. 미국의 구조기능주의 사회학자 데이비스와 무어(Davis & Moore)는 1945년에 이미 학력에 따른 능력과 업적 수준에 따라 상이한 보상을 해주는 것이 마땅하다는 능력주의나 업적주의를 제시했으며, 이는 오늘날에도 만연해있다. 이명박 정권이 실용주의를 강조하는 것 또한 이러한 능력주의와 맥을 같이 하는 것이다. 문제는 능력이나 업적의 차이가 순수한 차이가 아니라 과거 그들이 차지하고 있었던 불평등한 지위에 따른 것일 경우, 보상의 공평성은 심각하게 훼손될 수 있다는 것이다.

학벌문제는 모든 사람에게 열려 있어야 하는 기회구조가 파벌정치 때문에 왜곡되는 과정에서 나타난다. 학벌(學閥)은 학력 차이에 의해 만들어지는 파벌이다. 같은 학연을 가진 사람들끼리 소위 ‘밀어주고 끌어주면서’ 부와 권력, 명예를 독점하는 권력집단이 바로 우리사회의 학벌이라는 것이다. 학벌은 학교를 매개로 형성되기 때문에 혈연집단과 같은 귀속적 지위를 처음부터 가지지는 않는다. 그러나 한번 학교가 정해지고 특정학교를 중심으로 학벌이 형성되면, 그때부터 학벌은 영원불멸한 사회적 지위를 보장해준다. 이 과정에서 유일하게 개인능력이 발휘되는 것은 학교에 진입하는 과정이다. 한번 만들어진 학벌은 영원히 바꿀 수 없다는 것을 너무나 잘 알고 있기 때문에 사회 전체가 일류대학에 들어가기 위해 몸부림치는 것이다.

우리사회에서 학벌의 힘은 막강하다. 누구나 선망하는 교수나 변호사, 의사세계에서도 어느 학교 출신이냐에 따라 사회적 영향력이 달라진다. 한번 학벌이 만들어지면, 그 집단은 다른 집단과 차별화하기 위해 끊임없이 ‘구별 짓기’를 시도한다. 그래서 학벌은 권력과 신분의 상징이자 배제와 사회적 폐쇄의 수단으로 작동한다. 개인 능력보다 소위 말하는 SKY대 출신 여부가 사회적 상승이동을 결정하는 우리 현실이 이를 잘 보여준다.

더 큰 문제는 학벌이 사회계급에 따라 재생산되고 있다는 점이다. 많은 연구는 부모의 계층지위와 자녀의 교육성취 사이에 높은 상관관계가 있음을 보여준다. 실제로 서울대 진학률은 서울 강남에서 가장 높다. 그리고 이들은 부모의 대를 이어 학벌사회의 중심에서 권력을 독점하고 향유할 수 있다. 개인능력과 업적에 따라 자유로운 사회이동이 이루어질 수 있다는 전제는 이제 불평등을 은폐하는 정치이데올로기에 불과하다.

학벌은 해체되어야 한다. 만약 구조적으로 해체하기 어렵다면 적어도 학벌이 권력과 신분의 수단으로 작동하지 못하도록 제도적 장치라도 마련해야 한다. 600년 조선의 붕괴가 붕당정치의 폐해임을 너무나 잘 알고 있는 우리로서는 학벌의 문제를 더 이상 좌시할 수 없다. 누구에게나 능력에 따라 보상이 주어지는, 그래서 자유로운 사회이동이 가능한 유연한 민주사회를 기대해본다.

김흥주 (원광대 복지보건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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