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겨울 새만금은 '갈색 낙원'
이 겨울 새만금은 '갈색 낙원'
  • 소인섭
  • 승인 2008.02.14 19:1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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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추억여행-새만금 갯벌
▲ 새만금지구 김제 심포항 가전리의 갯벌이 염생식물로 온통 뒤덮혀 있다.
물이 빠진 새만금 갯벌은 죽은 땅이 아니다. ‘나문재’라 불리는 염생식물이 보랏빛을 잃고 검게 말라 비틀어져 있어도 모래땅에 검은 씨를 남기고 있는 것처럼, 박토가 된 새만금엔 여전히 사람을 부르는 생물체가 살고 있다.

횟집을 가고 갯벌에서 체험활동을 하던 심포항 근처를 다시 찾은 것은 14일 오후 2시. 그곳은 예상대로 많은 변화를 불렀다.

새만금 물막이 공사가 이뤄진 뒤로 바닷물이 넉넉하게 유입되지 않아 백합과 동죽을 캐던 회색 갯벌은 이제 황량한 벌판으로 변했고 일부 해변을 따라 억센 갈대가 바람을 이겨내고 있었다.

심포항을 중심으로 약 825만㎡가 형성돼 있던 U자형 만이 아직은 황량한 박토인 형태로 마치 몽골의 대평원을 연상케 하는 모습이다. 광야를 대하고 보니 마구 달려보고 싶어진다. 축구장보다 더 넓은 공간은 잔디밭보다 더 고운 모래를 깔아 운동하기 딱 알맞다.

앞바람을 맞고 서면 뒤로 물러설 듯 센 바람에 놀랍다. 예전만큼은 아니지만 갯내음이다. 오는 10월이면 인근 광활면 갯벌에서는 갯벌축구대회가 열린다는 소식도 있다.

여전히 맨손어업을 하는 아낙들이 있고 엄연히 염생식물이 뿌리를 박고 있다. 또 노루란 녀석은 모랫바닥에 발자국을 남긴 흔적이 뚜렷했다. 물길을 따라 한 가족은 투망질을 해 망둥어와 숭어새끼잡이에 열중이다. 민물고기인 붕어가 섞여 나오기도 한다.

2천∼3천㎡에 이르는 거전리 앞에서는 갯벌 드라이브를 즐길 수도 있다. 화포쪽 보다는 거전리 쪽에서 접근하면 옛 등대가 있던 자리까지 아직은 푸석푸석한 모랫길을 따라 드라이빙이 가능하다.

사막 랠리와 같은 스릴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특히 운전대를 잡아 보지 못한 어린이에게 운전대를 맡겨 본다면 탄성을 지를만한 감동이 있을 것 같았다. 미답지를 밟아 보는 재미에 푹 빠져 아직 다져지지 않은 모래밭에 들어가면 위험에 빠질 수도 있다. 인근에는 천년고찰(1957년 중건)인 망해사가 절벽을 따라 우뚝 서 있다.

심포항에 줄지어 선 횟감을 파는 집들은 여전히 싱싱한 횟감을 내놓고 있었다. 이 곳서 잡히는 생합(백합)과 피조개·홍합·소라·죽합·키조개·모시조개 뿐 아니라 개조개·가리비와 같은 외지 어패류도 같은 자리를 하고 있었다. 그러나 신·구 횟집단지는 예전만 못하다고 푸념을 늘어 놓는다. 물막이와 기름유출사고 이후 손님이 많이 떨어졌다는 것이다.

출출해지면 바닷가에서는 해물요리가 제격이다. 동죽을 이용한 꼬막칼국수류는 이제 명물이 됐다. 거전리 쪽에 위치한 두어 곳에서 파는 칼국수와 시큼하게 무쳐 나오는 무침을 군침을 돌게 한다.

▲ 가는 길=김제 만경읍→만경 농공단지→SK주유소 왼쪽 뒤편으로→원불교 화포 교당. 또는 만경읍에 위치한 만경여고를 뒤로 만경면사무소로 거쳐 진입할 수 있다.

<심포항을 끌어안고 사는 사람들>

“배수갑문 좀 열어 달라고 해주쇼.” 뭐가 나올 것 같지도 않았던 바닷가에서 만난 10여 명의 맨손어업 아낙들과 그랭이(갯벌을 긁어 생합을 찾는 기구)를 든 어민들의 하소연이다.

아침 8시30분에 나왔다는 이들은 2시15분에야 아쉬운 발걸음을 돌리며 기자에게 보여주는 것은 두어 주먹이나 되는 조개들이다.

“날 좀 따숴져서 부랴부랴 나왔더니 물이 빠지질 않아요. 날이 매운 날은 꼬박꼬박 열어 물이 잘도 빠지더니….”

한 아주머니는 날이 좋고 운수 좋은 날은 5만원 정도도 번다고 자랑한다. 2만 원 정도 벌이를 만족해야 할 때도 많지만. 이날 잘 빠지던 물이 그대로였던 것은 가력도 배수갑문 안쪽 공사를 하느라 막아놓았기 때문이었다. 보통 한 달에 3∼5일 정도를 빼놓고는 열어 둔다는 것이 새만금사업단측 설명이다.

조개를 실은 배를 선착장에 막 붙이는 배에 다가가 봤다.

“전 만큼은 아니지만 한 4시간 작업하면 500㎏ 정도 건져요.” 이름을 밝히길 꺼려한 그는 작은 생합을 뿌려 놓았다가 6개월 만에 거둬들이고 있다고 귀뜸했다. 그러면서 외지인들의 선박어업이 많이 늘었다고 불만을 털어놓았다. ‘타지 선박은 2월10일까지 이탈해 달라’는 플래카드의 내용을 이해함직 했다.

심포항 근처엔 조개류와 횟감을 파는 고만고만한 크기의 가게들이 여전히 늘어서 있다. “이곳으로 시집 온지는 꽤 오래됐지만 장사는 1년 됐는데 주말이면 사람들이 그래도 많이 와요.”라며 “날이 왜 이리 춥냐”고 투덜댔다.

소인섭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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