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인은 1934년 옥구군 성산면 출신으로 군산중·고와 중앙대학교 법학과를 거쳐 중앙대학교 교수를 역임했다.
지난 1971년 37세 젊은 나이에 제8대 국회의원으로 당선돼 당시 야당인 신민당 대변인으로 활동하면서 박정희 정권에 맞서다 중앙정보부에 끌려가 혹독한 고문을 당하는 등 탄압을 받다가 결국 도중 하차하기도 했다.
특히 그는 서슬 퍼렇던 군사정권 시절 금기시됐던 실미도 사건 진실을 훗날 세상 밖으로 끄집어내는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이런 연유로 그는 지난해 제작된 영화 실미도 대박과 함께 이 사건을 최초로 폭로한 정치인이라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유명세를 타기도 했다.
이랬던 고인은 무려 17년 동안이나 정치규제에 묶여 활동할 기회를 박탈당했던 불운을 맞았으나 2001년 4·26 기초단체장 재선거를 통해 화려하게 재기하는 집념을 보였다.
이듬해 그는 재선고지를 너끈하게 넘는 저력과 함께 특유의 트레이드 마크인 추진력으로 기업유치를 위해 이국만리 해외 출장을 불사하는 등 군산시 발전에 정열을 쏟았다.
특히 그는 단시간 준비만으로도 국제자동차엑스포와 철새축제를 성공적으로 이끌 만큼 탁월한 행정력을 유감없이 보여주기도 했다.
이와 함께 재임중 수송택지 개발과 월명공원과 은파유원지 산책로 정비 등 굵직굵직한 현안들을 해결했다.
빈소는 종로구 혜화동.
군산=정준모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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