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희봉 "배우는 욕심이 참 많은 사람"
변희봉 "배우는 욕심이 참 많은 사람"
  • 박공숙
  • 승인 2008.01.23 13:2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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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더 게임'(감독 윤인호) 주연배우 변희봉.
젊은 관객은 부모님 또래인 중견 배우들의 얼굴과 이름을 선뜻 연결하지 못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스크린과 브라운관을 통해 자주접해 얼굴은 낯익은데 이름만 따로 떼어 들어서는 모습을 얼른 떠올리지 못하는 식이다.

그러나 데뷔 40년을 훌쩍 넘긴 중견 배우 변희봉은 다르다. ‘괴물’ ‘살인의 추억’ ‘선생 김봉두’ 등 젊은이들의 사랑을 듬뿍 받은 흥행작에서 그는 적은 분량으로도 강렬한 인상을 남겼고, 대다수 젊은 관객은 어느새 변희봉이란 이름 석 자만 들어도 스크린 속 그의 얼굴을 곧바로 떠올릴 수 있게 됐다.

그의 새 영화 ‘더 게임’(감독 윤인호)의 31일 개봉을 앞두고 서울 종로구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만난 그에게는 인터뷰 도중에만 두어 차례 오락 프로그램 출연을 요청하는 전화가 걸려 왔다. 그러나 그는 연거푸 정중하게 거절 의사를 밝혔다.

“‘괴물’로 젊은 관객에게서 분에 넘치는 사랑을 받았죠. 그런데도 아직은 오락 프로그램 출연이 썩 내키지가 않네요. 물론 그런 프로그램에 적극적으로 나와 시청자를 즐겁게 해 줄 수 있는 배우도 있지만 저는 그렇지 못해요. 허허.” 이번 영화에서 그에게는 어려운 과제가 주어졌다. 모든 것을 가지고도 젊은 신체를 얻으려 과욕을 부리는 노인 강노식과 그의 속임수에 빠져 몸을 맞바꾼 뒤 자신의 몸을 되찾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청년 민희도 역을 동시에 맡게 된 것.

“시나리오를 처음 읽었을 때 연기 폭이 넓은 역이라 욕심이 났습니다. 그런데 저는 처음에는 강노식에만 중점을 뒀죠. 몸이 바뀐 뒤엔 민희도를 연기하게 되는 건데 미처 생각지 않았던 겁니다. 감독과의 첫 미팅에서 그 사실을 깨닫고 쉽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흔치 않은 역이니 해 볼 만하다고 결정했습니다.” 이 영화에서 그의 출연 분량은 이제까지 찍었던 어떤 작품보다도 훨씬 많다. 데뷔 40년을 넘겨서 영화 첫 주연을 맡게 된 것이다. 그는 “(민희도 역의) 신하균 씨가 주연이고 나는 조금 많이 나온 조연”이라고 겸손하게 말문을 열었지만 ‘엄연한 투톱 체제’라는 지적에 “주연은 이번이 처음인 셈”이라며 너털웃음을 보였다.

“나이 든 사람이 젊은이가 돼야 하니 굉장히 부담이 되더군요. 자칫하면 어설픈흉내로 영화에 흠만 될 수 있으니까요. 저는 아주 큰 폭으로 변화를 주는 것이 낫다고 생각했지만 윤 감독은 제가 맡은 민희도 역을 약간 희화화하는 게 어떻겠느냐고 제안하더군요. 대화 끝에 감독 의견을 따르는 쪽으로 했어요.” 그는 자신과 반대로 젊은 신체를 갖게 된 욕심 많은 노인을 연기한 신하균에 대해서는 “절제된 연기가 돋보였다”고 평가하면서 “젊은 후배지만 그 자제력만큼은 내가 정말 배워야 할 부분”이라고 덧붙였다.

이제까지 조연으로 출연한 수많은 영화에서 가장 기억에 남을 만한 장면을 꼽아달라고 요청하자 그는 ‘괴물’에서 죽음을 맞기 직전 눈빛과 손짓으로 자식들을 보내는 장면과 ‘선생 김봉두’에서의 마지막 졸업식 장면을 꼽았다. 그에게 “세월이 흐르면서 작품 속에서도 점점 속 깊고 든든한 아버지상을 만들어 가고 있는 것 같다”는 말을 건네자 그 역시 고개를 끄덕였다.

“제가 아버지상에 대한 미련이 많아요. 세상이 많이 바뀌기는 했지만 아버지라는 존재의 의미에는 변함이 없는 것이죠. 세상의 부정(父情)도 사실 각양각색이 아닙니까. 그런 다양한 아버지의 모습을 작품 속에서 계속 그려 나가고 싶습니다.” 데뷔 43년차 배우가 연기를 대하는 마음가짐은 어떨까. 시간이 지날수록 어느 정도 편안한 마음으로 연기를 하게 되는지, 아니면 점점 더 열정을 불사르게 되는지물었다. “배우는 욕심이 참 많은 사람인가 봅니다. 40년을 하고도 도대체 뭘 더 하고 싶다는 건지… 젊었을 때보다야 어떤 모습을 보여줄지 숨 고르기를 할 수 있게 됐지만경험을 발판 삼아 나아가고 싶을 뿐입니다.(젊은 후배들에게 해 줄 만한 조언을 구하자) 뜻을 품고 포기하지 말라는 거죠. 배우로서의 운명을 알고 희열을 느낄 때까지 말입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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