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권의 단골구호 ‘물갈이’
정치권의 단골구호 ‘물갈이’
  • 이병주
  • 승인 2008.01.16 15: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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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병주<정치부국장>
18대 총선을 80여 일 앞두고 정치권에서 물갈이 논란이 또 터져나오고 있다.

대선에서 패배한 대통합민주신당, 차기 정부를 이끌어 갈 한나라당 모두 공천 물갈이 논쟁에 휩싸여 있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여야가 내부에서 물갈이를 통한 ‘당 쇄신론’이 커져가고 있다.

한쪽은 대선 패배의 책임을 털어내고 총선에서 살아남기 위한 몸부림이고, 다른 한쪽은 대선 승리의 여세를 몰아 국회 과반의석을 차지하겠다는 야심찬 복안이다.

양측의 물갈이의 명분은 다르지만 총선을 치르기 위한 의례적 통과절차다. 언제부터인지 몰라도 물갈이 논란은 역대 총선 때마다 어김없이 나타난 정치권의 ‘단골 구호’가 됐다.

지난 2004년 17대 총선 당시 한나라당은 대폭 물갈이라는 기치를 들고 탄핵풍을 이겨냈고, 2000년 16대 총선 때는 시민단체의 낙선운동이 물갈이 논쟁을 지폈다.

특히 김대중 전 대통령은 제왕적 총재시절 ‘젊은피 수혈’이라는 명분을 앞세워 수도권과 호남에서 물갈이를 단행한 바 있다.

현재 정치권의 물갈이 기류를 타고 도내에만 11개 선거구에 자천타천 110여 명에 달하는 총선 입지자들이 활보하고 있다.

상당수의 입지자들이 지난 대선에서 특정후보를 도왔다는 명분을 앞세워 공천전에 뛰어들었고, 일부 입지자는 출마 선거구조차 확정짓지 못한 채 이곳저곳을 기웃거리는 웃지못할 상황까지 벌어지고 있다.

심지어는 지역활동은 외면한 채 서울에 머물면서 이당 저당 문을 두드리는 줏대없는 입지자까지 생겨나고 있다.

여야 모두가 대선 이후 패배감과 승리감에 각각 도취해 아직까지 정체성을 확보하지 못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신당은 지난 14일부터 18일부터 1차 총선후보자 신청 접수를 하고 있다. 공천을 위한 사전 기초조사와 전략공천 등을 감안해 앞으로 2차, 3차로 나눠 후보자 접수를 받는다. 한나라당도 공천에 앞서 우선 당협위원장에 대한 지역여론조사를 실시한다는 방침이다.

4년마다 한번씩 일고 있는 정치권의 물갈이론은 나름대로 바람직한 측면이 있다. 장강(長江)의 앞물이 뒷물에 밀려 바다로 나갈 수밖에 없는 것처럼 시대의 변화를 따라가지 못하는 인물들은 새로운 사람들로 교체되는 것이 순리다.

하지만 어항의 물을 가는데도 분명한 원칙과 지켜야 할 기준이 있다는 것이다. 완전히 물을 갈 때와 부분적으로 물을 갈 때가 다르다.

또 어항 속의 고기 종류에 따라 물갈이 방법이 다를 수밖에 없다. 자칫 잘못하면 물고기들이 떼죽음을 당할 수 있기 때문이다.

여야 각 당이 물갈이를 제대로 하려면 시대정신이 무엇인지를 진지하게 고민하고, 고민의 결과를 바탕으로 명확한 기준과 방법을 제시해야 한다.

과거 총선 때의 물갈이 논란에서는 정치 발전과 같은 원칙론부터 부패자, 파렴치한, 무능력자, 해당행위자와 같은 그럴듯한 이유들이 제시됐다.

따라서 물갈이 주장이 신당의 경우 대선 패배 추궁이 출발점이라면 여론의 뭇매를 맞을 것이고, 한나라당의 경우 정치개혁이나 정치발전을 위한 작업이기보다는 대선전리품을 챙기기 행위라면 그들의 목표인 과반의석 확보는 어려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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