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해숙 "극적 모정과 현실적 모정 사이 갈등"
김해숙 "극적 모정과 현실적 모정 사이 갈등"
  • 박공숙
  • 승인 2008.01.10 14:3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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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견 배우 김해숙은 엄마다. 화면 속에서 코끝이 빨개지도록 울고 있는 김해숙의 얼굴은 집에서 자나깨나 자식 걱정을 하고 있을 ‘ 우리 엄마’의 얼굴과 그대로 겹쳐 보는 이를 울린다.

10일 개봉하는 영화 ‘무방비도시’에서 김해숙은 또 다른 모습의 엄마로 변신했다. 형사 김명민을 아들로 둔 소매치기 전과 17범인 엄마다. 그가 이번 영화에서 시도한 변화의 폭은 악역 연기에 처음 도전한 주연 배우 손예진이 보여준 변신 폭보다도 크다. 그는 단정한 단발이나 뽀글뽀글한 파마 머리가 아닌 남자 같은 짧은 커트 머리 스타일에 화장기가 전혀 없는 굳은 얼굴로 스크린에 등장한다. 아들에 대한 아픈 마음을 속으로 삼키고 뜨거운 정을 내색하지 않는 그의 모습은 모정(母情)보다는 부정(父情)에 가까워 보인다. 그가 평소 드라마에서 보여 왔던 절절한 모정을 비로소 드러내는 것은 이야기가 중반을 지난 뒤부터다.

영화에서와 달리 단아하고 우아한 모습으로 인터뷰 장소에 나타난 그는 “촬영 초반에는 소매치기의 모정이 보통 엄마들의 모정과는 다를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촬영이 진행되다 보니 그렇지 않더라”며 “드라마틱한 모정과 현실적인 모정 사이에서 어느 쪽을 택해야 할지 갈등을 느꼈다”고 털어놨다.

“이상기 감독은 애절한 모정 연기를 주문했습니다. 하지만 저는 애초에 변신을 하고 싶었던 만큼 제가 상상하고 준비했던 극적인 모정을 보여주고 싶었어요. 영화 도입부에 교도소에서 막 출소한 장면이 바로 그런 모습이죠. 그런데 실제로 전직 소매치기 여성을 만나 보니 그늘진 엄마의 모정도 모정이라는 걸 느끼게 됐어요. 세상에 자식밖에 안 보이는 현실 속 엄마의 모습이더군요. 그래서 방향을 바꿨죠. 영화에서도 그런 변화가 눈에 보일 겁니다.” 이번 영화에서 그는 아무리 중견이라도 웬만한 연기파 배우가 아니면 하기 힘들만한 강렬한 연기를 선보인다. 살벌한 표정으로 면도칼을 씹고 노숙자가 돼 길바닥에 주저앉아 있는가 하면 저혈당 쇼크로 온몸을 덜덜 떠는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 징하다’는 감탄이 절로 나온다. 그 역시 “정말 징하게 찍었다”며 “내가 나오는 장면은 영화에 꼭 필요한 부분인데다 다 감정신이라 더욱 어려웠다”고 설명했다.

“시나리오를 받았을 때는 흥분, 기대감, 부담감이 동시에 들었어요. 말투와 눈빛까지 평소와는 다른 모습이니 고민을 많이 했죠. 이 역에 대해 애착이 얼마나 가던지, 촬영을 위해서 머리 스타일을 짧게 바꾸고는 그걸 미리 보여 주기 싫어서 밖에 나갈 때는 가발을 쓰고 다닐 정도였답니다. 다 찍고 나니, 다시 한다고 해도 이보다 더 잘할 수는 없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정말 최선을 다했다는 자긍심이 드는 거죠. 영화의 마지막 장면은 1주일 동안 이제껏 맞은 것보다 훨씬 많은 비를 맞으면서 찍었는데, 후시 녹음하면서 다시 보고는 너무 슬퍼서 1주일 내내 앓아 눕기도 했습니다.” 영화가 예상보다 신파조가 강하다는 지적에 그는 “아주 사실적인 영화인 동시에복잡하지만 운명적으로 얽혀 있는 인물들의 관계를 그리는 데 중점을 둔 영화”라고 강조했다.

“제작진과 출연진이 전직 소매치기와 형사들을 만나 봤어요. 소매치기 범죄가 잘 알려져 있지 않아서 이 영화가 꼭 만화 같다는 얘기를 하는 분도 있지만 사실에 기반을 둔 굉장히 현실적인 영화입니다. 신파라는 지적도 있지만 실제로 이렇게 험난한 삶을 사는 사람도 존재하는 거죠. 억지로 관객을 울리려 한 게 아니라 본인도 원치 않은 관계가 운명처럼 얽히면서 그렇게밖에 살 수 없었던 사람들의 이야기입니다.” 스크린과 브라운관에서 시골 아줌마부터 상류층 부인까지, 아낌없이 퍼주는 착한 엄마부터 빗나간 자식 사랑을 보여주는 악역까지 다양한 중년여성의 모습을 그려온 그에게 앞으로의 계획을 묻자 그는 주저없이 “또 변신하고 싶다”고 답했다.

“이번 영화에서는 결국 현실적인 모정을 보여주는 쪽으로 연기한 셈이죠. 앞으로 ‘가상의 인물’을 연기해 보고 싶어요. 현실에서의 모습과는 전혀 다른 새로운 인물, 내가 만들어 가는 극적인 인물을 하고 싶은 거죠.” 연기에는 나이가 아무런 상관없다. 50대 중반의 그 역시 아직도 하고 싶은 게 많은, 앞길 창창한 배우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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