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태웅 "안 볼 이유가 없는 영화 '우생순'"
엄태웅 "안 볼 이유가 없는 영화 '우생순'"
  • 박공숙
  • 승인 2008.01.09 13:1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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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아테네 올림픽에서 덴마크와의 접전 끝에 은메달을 따낸 여자 핸드볼팀의 가슴 아린 사연과 감동의 몸짓을 뭉클하게 그려낸 영화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이하 우생순)에는 당연히 여자 배우가 많이 등장한다.

여기에 임순례 감독과 제작자인 MK픽처스의 심재명 대표 역시 여자. 물론 다른 스태프들이야 남자들이 많지만 어쨌든 기 센 여자들 사이에서 엄태웅이 ‘청일점’으로서 버텨내기란 쉽지 않았을 터.

그런데 ‘우생순’에서 그는 ‘아줌마’ 선수들의 처절한 투쟁을 지켜보는 관조자이자 아줌마들을 내모는 훼방꾼이었다 누구보다 든든한 우군이 되는 안승필 감독을 맡아 전혀 새로운 느낌의 연기를 선사하는 성과를 거뒀다.

까만 선글라스를 쓴 채 느끼하기 이를 데 없는 말투로 등장해 얄미운 말과 행동만 골라 하던 그는 어느덧 삶이 고단한 선수들을 격려하며 영화 마지막 “혹시 지더라도 울지 말라. 승패 여부와 관계없이 우린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을 맞았다”는 가슴 뭉클한 대사로 영화의 주제를 단도직입적으로 알린다.

“뜬금없어 보이지 않을까, 이게 가장 걱정됐습니다. 영화 속에서도, 실제 촬영 현장에서도 저(또는 안승필 감독)의 존재가 뜬금없이 나타나는 게 아닌가. 하지만 ‘ 할 게 있겠다’ 싶었어요. 그저 지나가는 인물은 아닐 테니까요.” ‘뜬금없다’는 표현은 미안함과 무서움을 나타내는 말이라고 한다. 여배우들이 석 달간 치열한 훈련을 할 때도 그저 코트 한켠에서 지켜봐야 했던 미안함과 여배우들이 저렇게 열심히 하는데 자신 때문에 절름발이 영화가 되면 어떻게 하느냐는 걱정이었다. 그러면서 그는 “훈련 모습을 보면서 정말 미안했는데 내심 ‘다행이다’라고 생각하기도 했다”며 웃었다.

그가 영화 속에 녹아들어간 건 임순례 감독과의 독대 후였다.

“훈련 후 곧바로 결승전 장면을 찍었죠. 제가 영화 속에 들어가지 못하고 있을 때 감독님이 새벽에 소줏집으로 부르시더군요. 그 자리에서 한 20분 정도 둘 다 아무 말없이 술만 마셨어요. 한 병 반 정도 마셨나. 그리고 나서 제가 불쑥 ‘죄송합니다’라고 말했죠. 그러면서 뭔가 확 풀어진 듯한 느낌을 받았습니다. 그 이후 제 나름대로 자리를 잡아가기 시작했던 것 같아요. 임 감독님은 살갑고 따뜻하게 배려하시는 분은 아니고 무뚝뚝하지만 자신만의 방식으로 배우들을 배려하셨습니다.” 안승필 감독은 스타플레이어 출신으로 핸드볼이 인기 있는 유럽에서 활동하다 올림픽 대표팀을 맡은 인물. 혜경(김정은 분)과 한때 연인이기도 했던 그는 새로운 훈련법을 도입하며 사사건건 노장 선수들과 맞붙는다.

“안승필은 초반에 선수들에게 갈등을 줌으로써 오히려 똘똘 뭉치게 하는 계기를만들죠. 무모한 도전을 하면서 선수들과 인간적으로 동화해 보는 사람들에게 힘을 주는 역할입니다.” 당시 핸드볼 대표팀 감독이었고 현재도 올림픽 대표팀을 맡고 있는 임영철 감독의 모습을 코트에서 지켜보며 감독으로서 감각을 익혀갔다.

“임영철 감독님은 코트에서 별로 잔 동작이 없는 분이더군요. 아쉬운 상황에서도 별다른 표정을 짓지 않아요. 그래서 그렇게 콘셉트를 잡았는데 임순례 감독님이 더 크게 행동하라고 주문하셨습니다. 감독의 몸짓이 작으면 영화속에서는 잘 표현되지 않으니까요.” 임영철 감독에 대한 말이 나와 “영화 마지막 부분 임영철 감독이 울먹이며 말을잇지 못하는 내레이션이 너무 강렬해 배우 여럿 보냈다”고 말을 건넸다.

“맞아요. 일부러 연기하려고 한다고 해서 그 표정이 나오겠습니까. 영화가 미처정리하지 못한 게 있다면 그 내레이션이 ‘한방’에 정리해준 거죠. 배우로서 창피한 게 아니라 당연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제가 50, 60대가 됐을 때 그런 연기가 나올 수있을지 많은 생각을 하게 한 장면이었습니다.” 드라마에서는 ‘폐인’까지 만들어낸 주연 배우이지만 영화에서는 아직 단독 주연을 맡은 적은 없다. 다만 그는 ‘공공의 적2’ ‘가족의 탄생’ ‘내 사랑’에 이어 ‘우생순’에서도 존재감 있는 한 축으로 가치를 높여가고 있다. 2월 태국 촬영을 시작할 이준익 감독의 ‘님은 먼 곳에’에서도 순이 남편 역을 맡아 메인 타이틀이 아닌 그저한 축으로 존재한다. “아직 영화에서는 때가 안된 것 같아요.

아직 제가 하고 싶은 역할은 제게 들어오지 않습니다. 그러나 마음에도 없는 작품의 주인공을 하는 것보다는 내가 좋아하는 작품의 주조역급으로 연기하는 게 훨씬 더 좋아요.” 엄태웅은 드라마 ‘부활’로 이름을 알린 것도 나이나 경력으로 보면 다소 늦은 ‘ 대기만성형’이다. 뚜벅뚜벅 걸어가고 있는 것. 이미 촬영을 마친 장률 감독의 ‘이리’ 도 “어떤 작품인지, 사실 장률 감독이 어떤 분인지도 잘 모르고 합류해 많은 것을 배웠다”고 말한다. 재중동포 장률 감독은 ‘망종’과 ‘경계’로 세계 영화계의 주목을 받고 있는 인물.

2월 태국 촬영에 이어 아직 확정되지 않았지만 3월에는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촬영을 할 것 같다고 한다. 당분간 ‘우생순’ 무대 인사에 정성을 쏟을 예정. 이미 몇 차례 지방 무대 인사를 다녀왔는데 반응이 좋아 내심 흥행에 기대를 걸고 있다.

“(문)소리가 무대 인사 마치고 오는데 ‘우리 영화 정말 잘될까’라며 걱정하더군요. 그래서 제가 대답했어요. ‘안 볼 이유가 없잖아’라구요.”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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