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안, 절망을 넘어 희망으로
태안, 절망을 넘어 희망으로
  • 김생기
  • 승인 2007.12.28 14:4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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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안 앞바다 유조선 기름유출 사고가 발생한지 어느덧 4주째를 맞았다.

보도에 따르면 이번 사고로 허베이스피릿호에서 유출된 원유는 1만2,547㎘라고 한다. 드럼통(200ℓ) 63,000개에 달하는 물량으로 7만9천 배럴에 이른다. 미국 역사상 최악의 원유유출사고로 일컬어지는 1989년 엑손발데즈호의 알래스카 원유유출 량 약 30만 배럴에 비하면 적다고 할 수 있으나, 1995년 여수 해안의 씨프린스호 원유유출량 보다는 2.5배가 많아 결코 적은 양이 아니다.

TV화면을 통해서 보도된 사고현장은 할 말을 잊게 만들었다. 희디 희었을 물새가 시커먼 원유를 뒤집어 쓴 채 죽어가고 있고, 바다 밑에 주로 서식하는 꽃게가 기름범벅이 된 채 잡히기도 했다. 뿐만 아니라 멸종위기를 맞고 있는 고래과인 상괭이가 집단 폐사한 채 발견되는 등 안타까움을 더했다. 수중카메라로 본 바다 속 모습도 별반 다를 바 없어 보였다. 기름덩어리가 조류를 따라 떠다니고 있었고, 바닥의 돌을 치우자 가라앉은 원유가 덩이째 수면위로 떠올랐다.

필자도 방제 자원봉사 활동에 참여하여 미약한 힘을 보탰으나, 사고현장이 워낙 방대하고 닦아도 닦아도 계속해서 묻어나오는 기름으로 앞이 막막하기도 하였다.

하지만 언제나 희망은 절망의 가장 깊숙한 끝자락에서 나오는 것 같다. 어디서부터 손을 대야 할지 모를 시커먼 기름띠들이 전국 각지에서 모인 방제복을 입은 자원봉사자들에 의해 서서히 사라져가는 모습은 눈물이 날만큼 감격스러운 일이었다. 사고당시 바다는 물론 백사장, 바위까지 시커멓게 덮었던 기름띠가 자원봉사자의 도움과 참여로 이제는 외관상 기름때를 벗은 것처럼 보인다.

해양오염 방제를 위해 UN에서 참여한 해외 방제전문가들조차 한국인이 보인 자발적인 방제작업 열기에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고 한다. 그들은 단 2주만에 엄청난 양의 방제작업을 해낸 한국의 자원봉사자의 성과에 엄지 손가락을 치켜세우며 '기적과 같은 일'이라고 까지 칭송하면서 "오히려 한국의 자원봉사활동을 배우고 간다"라고 입을 모으기도 했다 한다.

필자는 이번 자원봉사자 행렬을 보면서 외환위기 당시 금모으기로 이어졌던 범국민운동이 떠올랐다. 나라가 국가부도위기에 몰리고 연일 기업들이 힘없이 쓰러지던 그 때, 온 국민들은 십시일반으로 장롱속 금붙이서부터 갓난아기 돌반지까지 나라를 살리겠다는 일념하에 하나씩 꺼내서 맡겼고, 그러한 개인의 노력이 모여 거대한 물결을 이루고 결국 IMF를 극복하게 되는 원동력이 되지 않았나 생각해본다.

해양경찰청에 따르면 지난해 연말까지의 자원봉사자수는 35만명에 육박하고, 경찰과 군인, 현지 주민 등까지 포함한 방제인력의 연인원은 60만명에 추산된다고 한다. 실로 엄청난 인파가 아닐 수 없다. 1997년 1월 일본 후쿠이(福井)현 미쿠니(三國) 앞바다 중유 유출사고 때 참가했던 자원봉사자의 연인원이 약 30만 명이라 하니 우리 국민의 자발적 참여의지가 얼마나 대단한지 한 눈에 알 수 있다.

한 가지 제안한다면 앞으로의 자원봉사활동은 방제작업의 진행상황에 따라 사고 지역 주민들에게 실제로 도움을 줄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하는 것이 어떨까 싶다. 이번 사고로 가장 직격탄을 맞은 어민, 양식업자 뿐만 아니라 간접 피해자인 숙박업 및 관광업 종사자, 지역 상인 등에게 골고루 혜택이 돌아갈 수 있는 실질적인 지원방안이 필요한 시점이다.

실제로 이 지역에 매년 12만명이 찾아왔던 새해 해돋이, 해맞이 행사는 예약 관광객이 거의 없어 취소되었다고 한다. 물론 기름을 제거하는 방제작업도 중요하지만, 이제부터는 지역주민과 경제에 도움이 되도록 가족과 함께 태안군을 비롯한 서해안을 방문하거나, 이 지역 특산품을 사주는 것도 훌륭한 자원봉사가 될 것이다.

무엇보다도 지금 가장 중요한 것은 생계터전을 잃고 시름에 잠겨 있는 지역 주민들에 대한 온 국민의 정성어린 배려와 따뜻한 격려이다. 지역 주민 모두가 절망의 끝자락에서 희망을 부여잡고 태안발 기적을 다시 일구어 나갈 수 있기를 두 손 모아 기원해 본다.

김생기<대한석유협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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