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인사회의 그늘 - 황혼이혼
노인사회의 그늘 - 황혼이혼
  • 김흥주
  • 승인 2007.12.24 17:4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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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한 해, 우리나라의 이혼 풍속도에서 가장 특징적인 현상은 55세 이상의 노인들이 자녀들의 성장 이후에 이혼하는 이른바 ‘황혼이혼’이 급증하고 있다는 점이다. 지난 4월 통계청에서 발표한 이혼 자료를 보면, 55세 이상 남자들의 이혼 건수는 12.9천 건으로 지난해에 비해 0.9천 건이 증가하여 가장 높은 증가율(7.8%)을 보였으며, 10년 전(96년)보다는 3.5배나 증가하고 있다. 여자들의 경우는 더욱 심각하여 10년 전에 비해 5.1배나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러한 황혼 이혼은 전 세계적 추세다. 이웃 일본의 경우 황혼 이혼은 흔한 일이며, 특히 사회에서 은퇴한 후 이혼을 '당하고' 홀로 사는 노인들의 문제가 사회적 이슈로 떠오를 정도이다. 영국의 경우 전반적인 이혼율은 12년 전에 비해 8% 감소한 반면 60세 이후의 이혼율은 20% 이상 증가하고 있다고 한다. 미국의 경우도 지난 12년 간 이혼한 노인의 수가 33% 이상 늘어났다고 보도하고 있다.

이렇게 황혼이혼이 크게 증가하는 이유는 다음 세 가지로 정리할 수 있다.

첫째, 평균수명은 증가하는데 비해 사회에서 은퇴하는 연령이 빨라져 부부가, 같이 살아야 할 시간은 많아지는데 비해 어떻게 살아야 할지 제대로 알지 못하는 경우가 늘어나고 있다는 것이다. 2005년 통계로 우리의 남녀 평균 수명은 78.5세다. 천수를 누리면 80~90세를 넘겨 살게 된다는 계산이 나온다. 그런데 정년 연령은 대부분 50대 초반이다. 때문에 정년 이후 30년 안팎을 노인부부가 집안에서 함께 살아야 한다. 더구나 노인부부 특성상 이때는 부부역할과 지위가 변화하고, 이로 인해 권력관계도 역전현상이 나타날 수 있다. 그러나 이를 서로의 상황을 인정하지 못하고, 이전의 역할관계나 생활방식을 고집하면 젊은 부부의 성격차이 만큼이나 커다란 이혼 사유가 될 수 있다.

둘째, 보다 높은 삶의 질에 대한 욕구가 많아지면서 이전에 "참고 살았던 부부문화"가 바뀌고 있다는 것이다. 사실 그 동안 남성중심의 가부장적 문화에서 부부관계가 유지될 수 있었던 것은 '여성 또는 아내'의 인내가 지대한 공헌을 했다. 그러나 남성이 변화하지 않은 상태에서 여성노인이 인내하기에는 구조적 한계가 있다. 여기에다 장성한 자녀들이 오히려 이혼선택의 기폭제가 되는 경우도 많이 있다. 참고 살기보다 이혼하고 자녀들과 편히 살기를 권유하는 자녀들이 크게 늘어나고 있다는 것이다.

셋째, 여성노인의 경제적 독립 가능성이 높아졌다는 점도 중요한 이유이다. 여러 가지 사회적 일자리는 여성노인들에게 다양한 취업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가족 관련법 개정으로 재산분할이 가능하다는 점도 여성노인의 경제적 자립 가능성을 높여주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노인들의 이혼 선택이 가능한 삶의 대안으로 떠오르고 있는 것이다.

이외에도 의학적 측면의 설명도 가능하다. 여성은 폐경기를 겪으면서 여성 호르몬 수치가 낮아지고 상대적으로 남성 호르몬의 수치가 높아지면서 태도나 말이 독립적ㆍ공격적으로 변화한다고 한다. 반면 바깥 생활에 치중하던 남편은 퇴직 시기를 전후해 남성 호르몬이 줄어들면서 가정으로 되돌아오는 경향이 많다. 그럼에도 남성노인이 변화하지 않고 기존의 가부장적 생활태도를 유지하려고 하면, 그만큼 부부갈등은 고조될 수밖에 없다. 이에 대한 여성노인의 선택이 이혼으로 치닫는 경우가 많아진 것이다.

황혼 이혼을 하는 노인들이 다른 연령층 보다 이혼 충격을 심하게 겪는다는 사실은 여러 연구에서 지적되고 있다. 특히 효의식과 가족부양체제가 붕괴되는 현실에서 홀로 남은 노인의 삶은 더욱 불행해질 수 있다. 사회적 차원에서도 황혼 이혼은 문제가 될 수 있다. 독거노인에 대한 사회적 비용은 고스란히 국민세금의 몫이 되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황혼이혼에 대한 보다 적극적인 대응이 필요하다.

무엇보다 남성노인이 변해야 부부갈등을 줄일 수 있고, 나아가 황혼이혼도 막을 수 있다. 남성노인은 노년기 들어 급격하게 변화하는 성 역할과 권력관계의 전복(顚覆)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수 있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노인됨(aged-making)’의 과정을 내면화하고 새롭게 인식할 수 있도록 노인부부 재교육이 활발하게 이루어질 필요가 있다. 자녀의 도움도 필요한데, 자녀가 갈등 조정자로서의 역할을 해주는 것이 물질적 효도보다 더 중요할 수도 있다. 보다 근본적인 것은 우리사회의 남성 중심 가부장적 질서와 문화를 해체하는 일이다. 양성평등의 부부생활이 건강하고 지속적인 부부생활을 만들 수 있다. 부부 사이의 역할강화를 위한 재교육, 사회적 대응 차원의 양성평등교육, 그리고 진실한 노인됨의 사회적 기술의 향상. 이런 것들이 황혼이혼을 막을 수 있고, 나아가 건강한 노인사회를 만들어가는 토양이 될 수 있다.

김흥주 <원광대 복지보건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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