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3. 민요 이야기
83. 민요 이야기
  • 소인섭
  • 승인 2007.12.21 15: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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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나라의 민족성을 알려면 민요를 들으라는 말이 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게 민요란 오랜 세월동안 민중의 삶이 배어 있는, 온축된 정서의 발양체이기 때문이다. 푹 곰삭은, 그래서 더 이상 발효할 것도 없는 마지막 진국같은 거, 이것이 민요다.

민요는 민중의 집단노래로서, 처음엔 제의적 주술성이 강한 노래였다. 신을 맞이해 구지봉에서 춤추며 불렀다는 ‘구지가’가 좋은 본보기다. 그러다가 효율적인 농삿일을 위해 작업공동체로 결집된 두레를 통해 민요는 차츰 확산된다. 이른바 노동요이다. 전국 각처에 분포되어 있는 ‘모찌기 노래’, ‘모심기 노래’, ‘논매기 노래’, ‘달구소리’ 등이 이에 해당한다. 전라북도 무형문화재 1호로 지정된 익산지역의 ‘목발노래’. 이 역시 지게 목발을 두드리며 부르는 노동요이다. 노동이 놀이요, 놀이가 곧 노동이라는 상호대체적인 인식이 민요로 나타난 것이다. 또한 사랑과 그리움을 노래한 애정요나, 자신의 처지를 한탄하는 자탄요, 시집살이의 고난을 그린 시집살이요 등이나 ‘아리랑’이나 ‘새타령’ 같은 타령도 민요에 포함된다.

‘꼬댁각씨 불쌍헌중/이방꾼이 다안다네/한살먹어 어멈죽고/두살먹어 아범죽어/세 살먹어 걸음배야/네살먹어 말을 배고/다섯살 먹어 삼촌네집이 찾어가니/삼촌숙모 거동보소/불때다말고 부주땡이로 날메치네’ 이는 ‘꼬댁각시 노래’이다. 어려서 부모 잃고 삼촌 집에서 크면서 온갖 구박을 다 받다가 시집 또한 가난한 곳으로 가서 고된 시집살이를 하다가 자살을 한다는 비극적인 내용이다. 이 민요는 정월에 부녀자들이 방안에 둘러앉아 꼬댁각시를 뽑고 나서 노래를 부르면 그녀에게 신이 내려 숨겨놓은 물건을 찾아내는 행동적 재현을 한다. 일종의 무술놀이인 셈이다.

민요는 기능에 따라 이처럼 다양하다. 그러나 어떤 류의 것일지라도 우리 민요는 한(恨)과 흥(興)의 정감이 있다. 한없이 슬프면서도 신명이 나는 이 모순적 정감, 이것이 한국민요의 특성이다. 역사적 질곡과 척박한 삶의 환경 속에서도 꿋꿋하게 생명력을 지탱해 왔던 민초들의 노래, 삶이 밀면 밀수록 더욱 악착같이 삶으로 다가섰던 ‘게사니’들의 노래가 바로 민요인 것이다. (‘게사니’는 거위라는 뜻의 평안도 사투리로, 거위처럼 꽥꽥대며 억척스럽게 산 사람을 지칭한다.)

급격하게 농촌문화가 파괴되고 있다. 농촌문화는 기층문화이자 고향의식 그 자체다. 농촌이 사라지고 그 문화마저 소실되어 버린다면 한국인들은 고향과 고향의식을 잊는거나 마찬가지다. 이것은 꿈의 상실이요, 개인의 신화시기인 유년기에 대한 기억의 탈색이다. 농촌사회와 유년의 신화시대와 고향의식이 묶어놓는 한국인의 심성 한복판에 민요가 있다. 그런데 이 민요가 차츰 우리의 일상 뒤로 숨어버리기 시작하더니 이젠 민요 한 가락 듣기가 어렵다. 어지간한 마을마다 노래방이 들어서고 농촌의 두레문화가 실종되어가는 요즈음 두레문화의 꽃이라 할 수 있는 민요는 우리의 귓전에서 멀리 있다. 의식, 노동, 유희, 개인적 정감 등 삶의 다양한 방면에서 불려졌던 민요. 여전히 우리는 일과 놀이를 날줄과 씨줄로 삼아 오늘을 살아간다. 이것이 민요가 현재에도 존재해야 할 근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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