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솜 한 근과 쇠 한 근
­솜 한 근과 쇠 한 근
  • 이소애
  • 승인 2007.11.27 16: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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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에 전주천을 나가 보라. 둥근 달과 아이들 눈망울 같은 별들이 차갑게 대지를 바라보고 있는 천변을 거닐어 보라. 그리고 새벽바람에 살랑거리는 갈대 옆에도 앉아 보라. 갈대와 갈대가 손을 맞잡고 사운거리는 소리가 어떠한지 들어 보라.

갈대는 강바람에 대항하며 살아가기 보다는 강바람을 보듬고 살아가는 그 영특함을 볼 것이다. 갈대의 줄기가 텅 비어 있는 것은 속마음이 비어서가 아니다. 다만 바람에 꺾이지 않으려는 유연함을 갖기 위함이다. 갈대의 잎을 보려면 갈대의 아랫도리를 살펴보라. 잎은 원통형으로 말려 줄기를 감싸고 있을 것이다. 이는 갈대가 세찬 바람에도 살아남으려는 처세술일 것이다.

조금만 시간을 갖고 의자에 앉아보면 우주의 소리가 들린다. 산 자와 죽은 자가 서로 공동체를 이룬다는 신의 음성이 들릴 것이다. 11월을 교회는 위령성월로 정하고 죽은 이들을 위하여 기도를 바친다. 먼저 세상을 떠난 이들과 살아 있는 사람들과의 통교가 가능하다고 믿기 때문에 기도를 한다.

독일 알퇴팅 성당에 들어서면 시계 초침이 사람 해골로 되어 있다. 무섭게 생긴 해골이 뚝딱하면 세상에 나와 산사람을 거두어 간다는 시계가 있다. 나는 그 시계를 보자 소름이 끼치기도 하였지만 뒤돌아서면 금시 잊어버린다.

위령성월에 아버님의 영혼을 위한 미사를 드리면서 옛날을 떠올려 본다. 아버님은 마흔 둘에 공인회계사 시험에 합격하신 분이다. 아버님은 초등학교 시절 나의 과외 선생님이셨으며 내가 배가 아프다고 하면 소금을 한 줌 쥐고 손바닥에 문지른 다음 먹여 주셨다. 두툼한 손바닥으로 나의 얼굴을 씻어 주셨으며, 잠들기 전에는 숙제를 돌보아 주셨다.

내가 이부자리에 들어가면 간단한 산수 문제를 꼭 내신다. 어느 날 아버지는

“솜 한 근이 무겁냐, 쇠 한 근이 무겁냐?” 라는 질문에 나는 “솜 한 근!” 이라고 자신 있게 대답하였다. 왜냐하면 분명 아버지는 쇠가 무거우면 그러한 문제를 낼 리가 없기 때문이라고 어린 나는 생각했었다.

아버지는 나의 답에 아무런 말씀도 없으셨으며 나는 그만 잠들고 말았었다. 그런 후에도 아버지의 질문이 나오면 나는 쇠 한 근이라고도 말했었지만 그 때에도 아무 말이 없으셨다. 언제쯤 정답을 맞힐 것인가를 기다리신 모양이었다. 수 십 년 후, 이번에는 내가 아버지에게 물었다. “아버지, 솜 한 근이 무거워요, 쇠 한 근이 무거요?”

아버지의 눈에는 눈물이 가득 차오르기 시작했다. 말이 나오지 않는 입술이 가느다랗게 움직였다. 아마 나의 철없는 초등학교 시절로 아버지의 기억은 되돌아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아버지의 눈물을 본 것은 그것이 마지막이었다. 아버지는 남천을 좋아하셨다. 남천을 남천촉 또는 남천죽이라고도 부른다. 나는 아버지로부터 상속받은 자산이 남천이라는 나무였다. 그 나무를 십 여 년 동안 화분에 옮겨 기르고 있다. 빨갛게 단풍이 든 잎과 열매는 정말 아름답다. 붉은 열매 알알이 아버지의 사랑이 박혀 있을 남천은 아직도 살아 있다.

이소애<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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