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고산성>홀트 女史
<남고산성>홀트 女史
  • 승인 2000.08.04 09: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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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리 훌륭하고 고급스런 고아원도 가난한 가정만 못하다" 이 말은 지구촌 고아들의 대모(代母)로 불리는 버서 홀트 여사가 남긴 말이다. 한국 고아들의 "수호천사"로도 불렸던 홀트 여사는 한평생을 오직 버려진 생명, 이른바 전쟁으로 인한 고아들을 위해 바쳤다. 그 홀트 여사가 지난달 31일 미국 오리건주 유진시 자택에서 96세를 일기로 하늘나라에 갔다.
▼국제아동복지재단(한국내 법인은 홀트아동복지재단)의 설립자이기도 한 홀트 여사는 1955년 한국의 혼혈 고아들에 대한 다큐멘터리를 본 것이 계기가 되어 남편과 함께 고아 입양사업을 시작하게 되었다. 그러니 한국이 이 세계적인 고아사업을 발생시킨 모태요, 고향인 셈이다. 생전의 홀트 여사는 한국을 피처럼 사랑한다 하였다.
▼홀트아동복지재단이 그간 한국 고아들에 국내입양한 수가 1만8000여명이다. 그리고 외국인 가정에 입양토록 한 수는 자그마치 7만여명을 넘고 있다. 우선 자신의 친자식 6명 외에 1955년 8명의 한국 고아를 미국으로 데려가 키우기도 한 홀트 여사다. 여사의 입양사업은 러시아, 중국, 브라질, 베트남, 인도, 태국, 루마니아까지 확대되고 있다.
▼홀트 여사의 유해는 여사의 유언에 따라 7일 국내로 운구된다. 9일 오전 10시 경기 고양시 탄현동 일산 홀트복지타운에서 홀트아동복지회장으로 장례가 치뤄지며 지난 64년 타계한 남편의 무덤 옆(복지타운 내)에 묻힌다. 테레사 수녀도 받았다는 "키스와니 세계 봉사상"에 우리나라도 국민훈장 무궁화장과 모란장을 수여했다.
▼한 때 고아 수출국 세계 1위라는 불명에를 안은 한국이다. 그것이 6,25전쟁 부산물이라는 데서 가슴 아픈 사연이다. 홀트 여사 같은 헌신적인 고아사업이 없었다면 우리 사회는 더 많은 눈물을 뿌렸을지 모른다. 이것이 여사의 영원한 안식을 바라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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