벽골제 주변 자연경관도 보존을
벽골제 주변 자연경관도 보존을
  • 이원구<전북대 생물과학부 교수>
  • 승인 2000.09.21 09: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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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2000년 9월 6일) 벽골제를 찾아갔다. 삼국시대에 축조된 우리 나라 최초의 저수지라고 한다. 김제시 근교의 드넓은 만경 평야에 위치하여 옛날에는 경제적으로 큰 도움이 되었을 것이다. 벽골제의 남은 흔적은 넓지 않은 수로와 둑, 그리고 장생거와 경장거라는 수문에 불과하지만 그 역사적 의미가 커서 잘 보존되어 있었다. 또한 박물관과 전시관들을 세워서 시민들의 휴식공간이나 학생들의 교육장으로 활용하고 있다.

시민 휴식공간 활용

벽골제의 둑에 올라가니 자잘한 풀들이 융단처럼 덮여 있고 무릎 위에 올라올 정도의 키 큰 잡풀들이 군데군데 덤불을 이루고 있었다. 가을이라서 풀벌레 소리가 들려왔다. 뚝 위의 풀 사이를 걷다보니 벌레들이 튀어 달아나는 것이 보였다. 손을 내밀어 한 마리를 잡았다. 삽사리라는 작은 메뚜기였다. 조금 더 가니 여치 같은 벌레가 있기에 그것도 잡았다. 바쁘게 지나가는 도마벰 두 마리와 마주쳤다. 꼬리가 회초리처럼 가늘고 긴 것이 흔히 보이는 장지뱀과는 달랐다. 그것도 잡아서 확인하고 싶었지만 두 손에 벌레를 들고 있어서 그만 두고 자동차로 돌아왔다. 비닐봉지 하나를 꺼내어 들고 다시 뚝에 올라갔다. 장생거로부터 동쪽으로 경장거를 향하여 걸으면서 메뚜기 종류를 몇 마리 더 잡아넣었는데 연구실에 와서 자세히 조사해 보니 방아깨비, 섬서구메뚜기, 매부리(여치의 일종)와 벼메뚜기가 있었다. 벽골제의 뚝에도 숫자는 많지 않지만 메뚜기 종류가 살고 있었다. 특히 벼메뚜기가 남아 있다는 것이 인상적이었다.

곤충˙조류 점차 사라져

요즈음 논의 주변에는 벼메뚜기를 보기가 힘들다. 농약과 제초제 때문에 벼메뚜기들이 견디지 못하는 탓이다. 벼메뚜기야 벼를 갉아먹는 해충이니까 없어지는 것이 오히려 좋지 않겠는가 하는 생각도 들 수 있다. 그러나 벼메뚜기 뿐이겠는가. 다른 벌레들도 사라져 간다. 벌레들이 사라지니 벌레를 잡아먹는 개구리도 없어지고 개구리를 잡아먹는 뱀도 없어진다. 그래서 요즈음에는 논에서 개구리나 뱀을 찾아볼 수 없게 되었다. 전주에서 김제를 다녀오면서 하늘을 나는 제비는 단 두 마리밖에 보지 못했다. 제비가 예전보다 10분의 1 이하로 격감했다고들 한다. 초가집이 없어져서 제비가 보금자리를 틀 곳이 줄어든 탓도 있겠지만 먹고 살 벌레가 사라지니 자연 제비들이 살아가기 힘들어졌을 것이다. 여기에는 문제가 있다. 메뚜기가 사라지고 제비가 사라지고 개구리나 뱀이 사라진들 우리 삶에 무슨 영향이 있으랴 싶지만 그처럼 농약에 찌든 환경 속에서 사는 사람은 과연 괜찮겠는가 생각해 볼 일이다.

후손위해 보존 필요

벽골제의 유적을 보존하고 기리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자연과학자의 입장에서는 이왕이면 벽골제 주변의 자연 경관도 자세히 조사하고 보존할 것은 보존해야 할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벽골제의 수로가 담고 있는 물 속에 어떤 물풀과 물고기가 살고 있는지 뚝에는 어떤 풀이 있고 어떤 동물이 살고 있는지 우리는 알고 있어야 한다. 그것들도 보존할 것은 보존하고 되살릴 것은 되살려야 할 것이다. 우리 자신과 후손들의 건강한 삶을 위해서 꼭 필요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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