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효자가 이제 왔습니다
불효자가 이제 왔습니다
  • 익산=김종순기자
  • 승인 2000.09.24 17: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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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련 고행방문단 엄응룡씨
아버지 불효자가 이제 왔습니다. 용서해주세요
무려 57년만에 익산시 웅포면 대붕암리 상제마을 고향집을 방문한 총련 고향방문단 엄응룡씨(75 일본 후쿠시마현)는 아버지 무덤앞에서 통곡을 멈출지 몰랐다.
18살의 팔팔한 나이에 징용길인지도 모르고 일본에서 돈벌어 온다고 집을 나간 엄씨는 이제 고희의 나이를 훌쩍 넘긴 할아버지가 돼 고향을 찾았다.
엄씨가 지난 57년간 고이 간직해 왔던 부모님의 초상화를 꺼내 보이자 누나 순애씨(91)와 형수 윤계원씨(84) 등 가족들은 서로 얼싸안고 오열을 했으며 조카 봉섭씨(55)의 얼굴을 쓰다듬으며 이미 작고한 형님의 모습을 더듬기도 했다.
가족들이 모두 객지로 떠나고 봉섭씨만 고향을 지키고 있었지만 주름살이 깊게 패인 죽마고우들이 엄씨의 귀향을 반기며 이야기꽃을 피웠다.
이미 많은 친구들이 저 세상 사람이 돼 엄씨는 57년 세월의 무게를 새삼 실감해야 했다.
탄광 막장에서 일본 생활을 시작한 엄씨는 그 후 막노동판을 전전하며 지긋지긋한 고생을 해야 했다. 일본에서 결혼을 한 엄씨는 어려운 생활속에서도 4자녀에게 고향 약도를 그려준 후 내가 죽더라도 너희들은 반드시 고향을 찾아야 한다 며 고국에 대한 그리움을 달래기도 했다.
이제 엄씨는 일본에서 조그만 식료품 가게를 운영할 정도로 자리를 잡았다.
가족들이 불이익을 받을까 봐 편지나 전화조차 못한채 단절의 세월을 보내 왔습니다. 살아 생전 몇번이나 고향을 찾을지 모르지만 이번 방문을 통해 잃었던 고향과 가족들을 되찾은만큼 여한은 없습니다
아버지 무덤에 한잔 술을 올리고 난 엄씨는 분단의 비극은 우리 세대로 끝나고 후손들은 통일된 조국에서 손에 손을 맞잡고 살아갈 수 있기를 학수고대한다 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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