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도 풍년이어야
그래도 풍년이어야
  • 노상운<논설위원>
  • 승인 2000.09.28 09: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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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야흐로 10월이 눈앞이다. 이 나라의 산야가 풍요와 정감으로 넘쳐흐르는 감상의 달이다. 풍성한 한해의 수확을 한꺼번에 선사해 주고 티없이 맑은 자연을 함께 제공해 주는 때문일 것이다. 이듬해까지 일용할 양식을 거두어들이게 해 주는 고마움과 감사, 축복의 계절임을 다시 느껴보게도 한다.
그러나 곡식이 탐스럽게 영글기는커녕 들판에 황폐한 흉년이라도 몰아치게 되면 그래도 10월이, 가을이 그렇게 우리의 마음을 정겹게 해 줄 수는 없을 게다. 목타는 갈증으로 건조한 잎사귀를 씹어대는 메마름으로 인간의 감정을 부드럽게 적셔 줄 수는 아예 불가능할 것이기 때문이다.
모르긴 몰라도 10월이 누런 곡식의 물결 대신 마른 잡초와 영글지 않은 곡식 껍질만 나뒹구는 계절이라면 아무도 그 10월을 대놓고 욕질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푸른 하늘이 아무리 드높고 맑아도 깡마른 비아프라의 기아로 뒤범벅이 된다면 어떤 시인도 그것을 감히 정상적인 심사로 노래하지 못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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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 8 10월은 풍년이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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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은 역시 풍년이라야 제격이다. 풍년 아닌 10월은 의미가 없다. 반대로 흉년의 10월은 10월도 아니다. 우리나라의 지금까지의 관점으로 보아서 그렇다. 옛날에 만일 한해라도 흉년이 왔다면 그것도 대기근으로 이어질 흉년이 졌다면 다음해 10월은 백성들에게 잠 못 이루는 날로 채워졌을지 모른다. 혹시라도 지난해처럼 흉년이 들까 봐 무서워서 말이다.
그러다가 또다시 연이어 흉년이 들었다면 2년째 가을은 어찌 되었을가 상상해 보기조차 쉽지 않다. 부황난 부녀자들이 더럽고 해진 옷을 입고 구걸하러 떠다니는 모습을 어렵지 않게 그려 볼 수 있다.
그러다가 또 한해 더 흉년이 든다고 하면 도둑떼가 들끓고 사람이 사람을 잡아먹는 아비규환으로 변할 것이 자명하다. 사흘 굶어 남의 집 담을 안 넘는 놈 없는데 3년을 굶는 판에 인간과 동물을 굳이 구별할 이유가 없을 것이다.
그러나 그렇게 3년이 잔악하게 왔다 갈지라도 인간은 그 10월을 다시 기다리지 않을 수 없다. 기다리지 않으면 안된다. 그래도 10월이 돼야 곡식은 익고 풍년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또 그렇게 곡식이 익는 게 가끔 우여곡절이 낀다 할지라도 변함없는 대자연의 법칙이기 때문이다.

섭리에 따라

따라서 그 기다림은 헤어날 수 없는 인간의 운명이자 자연의 섭리이다. 이 위대한 자연의 이치를 어찌 지나칠 수 있겠는가. 바로 10월의 깨우침이기도 하다.
우리나라에서 풍년은 역시 쌀의 풍작을 뜻하고 쌀을 얼마나 생산하였느냐에 의해 풍, 흉년이 결정된다. 그 기준으로 치면 지난 93년과 95년을 빼고는 마냥 풍작이다. 80년대 이후 처음으로 그 두해만 5백만톤이 안되는 475만톤과 470만톤의 생산량을 올리고 있다.
전국적으로는 항상 5백만톤이 넘었고 전북으로서는 80만톤이 대개 넘었으나 95년과 98년에 77만톤과 79만톤으로 평년작을 밑돌았다. 사상 최대풍작인 88년도의 96만톤에 비하면 약 20%의 못 미침이요, 최근 몇년간의 평년작 수준 82만톤 정도에 비하면 5% 정도 감수라고 할 수있다.

풍년이 기적같이

최근에 이르러서는 벼의 절대 재배면적이 80년대에 비해 전북은 2만4 5천 헥타르, 전국적으로는 20만헥타르 정도 축소하여 소출량도 그에 비례 하락하고 있다. 택지나 다른 산업용지로 전환되는 토지가 급격하게 늘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런지 이제 풍년의 기쁨도 전과 같지 않고 흉년에 대한 관심도 떨어지고 있는 듯하다.
그저 11월 초가 되면 올해도 풍작이라는 뉴스에 습관된지 벌써 몇년째가 되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때로는 그 풍년이 정말인지 귀가 설게 들리기도 한다. 올해는 어떻게 될지 모르겠다. 벼의 출수기와 영그는 시점에 비가 억수로 쏟아졌고 그 피해에 대한 우려가 전국을 휩쓸기도 했다.
그러다가도 막상 수확을 하고 나면 의외로 풍년의 결실을 얻는 게 기적같기도 하다. 그러나 이 가을도 꼭 풍년이어야 한다. 풍년으로 쌀이 팍팍 남아나지 않으니까 이북에도 우리 쌀을 못 보내고 남의 곡식 사다 보내는 게 아닌가. 흉년인지 풍년인지 모르고 지내는 것은 아직도 우리에게 재앙이다. 올해도 풍년이 들어 풍요와 정감으로 넘쳐흐르는 달이 되기를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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