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S 잘되는 여자
A/S 잘되는 여자
  • 김선남<원광대 신문방송학과 교?
  • 승인 2001.03.16 09: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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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전 모 대학 교수로 있는 필자의 여자 친구가 교수직을 그만두었다. 그 내막을 알아보니, 어렵사리 얻은 대학교수 자리를 그렇게 쉽게 놓아버린 친구의 선택 이면에는 안타까운 사연이 있었다. 그 선택은 '자녀 양육'에서 비롯되었던 것이다.

그녀는 수십 년간 머리 터지도록 공부하고 교수가 되느라고 불혹 가까운 나이에서야 겨우 결혼을 하였다. 매주 비행기로 남편이 있는 서울과 지방을 오르내려야만 했던 그녀. 최근 그녀는 아이를 출산하였고, 개강에 맞추어 출근하려고 하자 아이를 돌봐줄 사람을 찾을 수 없었다. 그러자 이 친구는 "겨우 백일 갓 지난 아이와 지방에서 지내야 할 것인가", "자신의 봉급으로 두 집 살림에, 자녀 양육과 비싼 비행기 삯을 충분히 충당할 수 있겠는가"를 심각하게 고민하기에 이르렀다. 결국 그녀는 퇴직을 결심하였다.

일등 신부감의 변화

최근 예비 신랑 사이에서 일등 신부감은 'A/S가 잘되는 여자'라고 한다. 'A/S 잘되는 여자'란 반찬 제공에서부터 자녀 양육에 이르기까지 뒷바라지 해줄 수 있는 친정집을 가진 여자를 말한다고 한다. 쉽게 말하여 요즘 젊은 남성들은 결혼 후 아무 때나 아이를 맡길 수 있고, 때에 따라서는 집안 살림을 대신 해줄 어머니를 가진 여자를 선호한다는 것이다.

이제 과거 신부의 제일 조건으로 꼽혔던 외모, 학벌, 가풍, 직업 등은 후 순위로 밀려버렸다. 신부 고르기의 변화된 풍조는 우리 사회에서 여성들의 사회 활동이 얼마나 어려운가를 반영해주는 대목이라 하겠다.

자녀양육에 대한 죄책감

실제로 여성들이 사회 활동을 하는데 있어서 최고의 걸림돌이 '자녀 양육'이라는 지적은 이미 여러 연구에서 입증된 바 있다. 김영(1997)에 의하면 직장 여성들이 겪는 가장 커다란 어려움은 '가사 및 자녀 양육에 소홀하게 된다는 점'(47.3%)이라고 한다. 또 이 항목에 '가족들이 집에 있을 시간에 집을 비우게 된다는 점(18.6%)'에 대한 응답을 덧붙인다면, 우리는 직장 여성들의 사회 생활의 걸림돌이 자녀양육을 포함한 가정 관리에 대한 부담과 책임이라는 현실을 생생하게 확인할 수 있다.

이러한 현상은 특히 전일제로 일하는 여성들에게서 뚜렷하게 나타나고 있다. 예를 들면 전일제 직장 여성들의 71.6%가 자녀 양육을 비롯한 집안 돌보기에 대하여 상당한 스트레스를 갖는다. 게다가 이들 대다수(90.5%)가 '아이에게 엄마 노릇을 제대로 해주지 못한 것'에 대한 미안함과 때로는 죄책감을 느낀다고 한다. 특히 자아실현의 욕구 강한 여성일 수록 자녀양육에 대한 죄책감이 더 크다는 것이다.

이처럼 우리의 성별 분업 이데올로기로 인하여 하루 종일 집밖에서 일하는 여성들은 '집에서 아이를 끼고 키우는 것'이 제대로된 엄마 노릇이라는 생각을 떨쳐버리지 못하고 있는 셈이 된다.

낙후된 유아교육시설

통계에 의하면 전국적으로 우리는 1만 8,000여 곳의 어린이 수용시설을 가지고 있으며 여기에서 약 60여만 명의 어린이들이 보호받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어린이집이나 놀이방에 아이를 맡길 수 있는 여성들은 그나마 다행이라고 생각된다. 실제로 많은 수의 저소득층 직장 여성들은 이러한 혜택에서 소외되어 있다. 게다가 대다수 직장 여성들은 어린이집이나 놀이방이 직장과 멀리 떨어져 있는 탓으로 아침 저녁으로 전쟁을 방불케 하는 고통을 끊임없이 겪어야 하며, 심지어 낙후된 유아교육 시설로 인하여 안전사고에 대한 불안감도 안고 산다.

여성의 절반 가량이 경제 활동에 참여하고 있는 최근 현실에 비추어볼 때, '아이 돌보기'를 단지 여성의 몫, 혹은 개인의 임무는 것은 너무 비현실적이고 무책임한, 전근대적 발상인 것 같다.

'A/S 잘되는 여자'가 으뜸 신부라는 이야기가 더 이상 우리 사회에서 회자되어서는 안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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