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차피 역사의 흐름은 상충과 공존의 합성어에 다름아니라고 할 수 있다. 흘러가는 모든 것에서 그것이 물이든 인간사든 혹은 시간이나 계절이든 충돌이 아닌 것을 볼 수 없듯이 또한 그것은 함께 가는 것에 예외일 수도 없는 때문이다. 곧 병존이요 병행인 것이다. 그런 점에서 갈등과 반목 대립이 변증법의 합일로 끊임없이 이어져가는 중간 현상인 동시에 또 하나의 독립적인 질서를 이룬다고 할 수 있다. 우리의 남북관계와 정당질서, 경제변화가 다같이 그러한 질서인 동시에 변화의 과정임도 틀리지 않는다.
민주당 박 상천 최고위원이 민주당 내에 몇사람이 극한적으로 치닫는다고 공박하고 나섰다. 1주일 전에 한나라당의 진보적 견해를 가진 의원들이 자당의 진보적 의사 봉쇄 분위기를 지탄하고 나선 것과 대칭되는 맥락이다. 이는 공존만 있지 상충하는 부분은 존재하지 않는 양 다양한 목소리를 내지 못하고 있는 당내의 적폐를 과감히 지적하고 나선 것이다.
뒤늦게나마 다행스러운 일이다. 공존의 전제는 상충의 존재를 인정하는 것이요 상충을 가다듬는 이유는 공존의 절실성과 목표적 의의 때문이다. 保革은 그런 점에서 나눔과 분열에 미덕이 있는 것이 아니라 상호 평화를 위한 서로 다름의 인식이요, 상호경쟁에 바탕한 발전적 동인을 얻는데 참뜻이 있다고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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