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라톤 영웅' 손기정옹, 노환으로 별세
마라톤 영웅' 손기정옹, 노환으로 별세
  • 연합뉴스
  • 승인 2002.11.15 18:0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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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치하인 1936년 베를린올림픽에서 마라톤을제패하며 대한

남아의 기개를 세계 만방에 떨쳤던 `마라톤 영웅' 손기정(孫基禎)

옹이 15일 노환으로 세상을 떠났다. 향년 90세.



손 옹은 노환인 폐렴 증세가 악화돼 갑자기 의식을 잃은 채 13일

서울 일원동삼성서울병원에 실려왔지만 끝내 정신을 회복하지 못

하고 15일 오전 0시40분께 별세했다.



임종을 지켜본 아들 정인(59)씨는 "그동안 마음의 준비는 하고 있

었지만, 막상닥치고 보니 마음이 착잡하다"라며 침통함을 감추지

못했다.



중환자실의 위유미 당직 레지던트는 "자정을 넘어가면서 산소포화

도가 점점 떨어지다가 심전도의 변화가 없어 사망을 확인했었

다"면서 "편안한 상태에서 가셨다"고 전했다.



지난 몇 년간 노환에 따른 신부전증과 폐렴으로 고생해 온 손 옹

은 지난 9월부터는 병원에 있는 날이 더 많을 정도로 병세가 급격

히 악화됐었다.



여든이 넘은 나이에도 믿기지 않을만큼 건강했던 손 옹은 지난 98

년 다리에 동맥경화 증세를 보이면서 건강이 급격히 나빠지기 시

작했다.



생명과도 같은 다리에 이상이 생기면서 2000년부터는 치매 증세가

찾아왔고 신부전증을 비롯한 각종 합병증에 기력이 눈에 띄게 떨

어진 지난해부터는 일체의 외부접촉을 끊고 집에서 누워 지내는 시

간이 늘어났다.



그러는 와중에도 정신이 또렷할 때면 보스턴마라톤대회에서 우승

한 이봉주와 92년 바르셀로나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딴 황영조 등 후

배들의 근황을 물어올 정도로 마라톤에 대한 사랑을 잊지 않았다.



1912년 평안북도 신의주에서 구멍가게와 행상을 하던 부모의 3남1

녀중 막내로태어난 손 옹은 한국마라톤의 살아있는 전설이자 산

증인이었다.



암울했던 시절 베를린마라톤에서 우승하며 핍박받던 민족에 커다

란 긍지와 용기를 안겨줬고 이는 20세기 한국 스포츠사에서 가장

감동적인 순간으로 꼽힌다.



하지만 그는 기미가요가 울리는 시상대에서 일장기를 가슴에 단

채 고개를 숙일수 밖에 없었으며 금메달은 영광보다 큰 상처로 가

슴속에 박혔다.



손 옹은 선수 생활을 그만둔 뒤에는 지도자로 나서 보스턴마라톤

을 제패한 서윤복과 함기용을 키워내며 한국이 마라톤 강국으로 발

돋움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하기도 했다.



또한 1960년대부터는 대한육상연맹 회장과 대한올림픽위원회(KOC)

위원 등을 맡으며 행정가로 한국 체육 발전을 위해 이바지해 왔다.



그리고 가슴 속 깊이 응어리졌던 `태극마크의 한'도 무려 56년이

지난 92년, 공교롭게도 같은날 같은시에 열린 바르셀로나올림픽에

서 황영조가 금메달을 따면서 풀렸다.



당시 팔십 노구를 이끌고 직접 바르셀로나를 찾았던 손 옹은 태극

마크를 단 황영조가 1위로 결승선을 넘자 참았던 눈물을 흘리며

그대로 주저 앉았었다.



하지만 쌓인 한이 풀려서인지 손 옹은 이후 눈에 띄게 늙어갔고 결

국 세월의 흐름을 이기지 못하고 운명을 달리했다.



손 옹은 국민훈장 모란장(70년)을 수상했으며, 「나의 조국 나의

마라톤」이라는 자서전을 남겼다.



유족으로는 아들 정인씨와 딸 문영(61)씨가 있다.

장례는 대한올림픽위원회(KOC)장으로 치러지며, 장례날짜는 유족

과 협의해 추후결정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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