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루지기 <542> 꽃값을 미리 달라
가루지기 <542> 꽃값을 미리 달라
  • <최정주 글>
  • 승인 2003.08.12 21: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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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옹녀의 전성시대 <18>

눈 짐작으로 닷냥은 될만한 엽전을 주모 앞에 툭 던져주며 이생원이 물었다.

“닭 한 마리에 화주 한 병 값으로야 넘쳐납죠. 고맙구만요. 생원 나리 덕에 이년이 묵고 산구만요.”

주모가 뼈 있는 소리를 했다. 그것은 지금 받은 이 돈은 다만 술값이며 안주 값일 뿐이지 꽃값은 포함되지 않았다는 속내가 담겨 있었다.

옹녀 년이 속으로 저 도둑년, 하고 중얼거렸다. 그만한 엽전이면 술값이며 안주값은 물론 꽃값으로도 충분한데, 방안에서 있었던 수작을 다 듣고 있었던 주모가 욕심을 부리고 있는 것이었다.

그러나 어차피 사내는 속없는 짐승이었다. 계집한테 환장한 사내는 더더욱 그랬다.

이생원이 허허허 웃으며 호기를 부렸다.

“주모가 안 그래도 그리 알고 있었네. 모처럼 꽃다운 꽃을 만났는데, 내가 꽃값을 아끼겠는가? 내 꽃값은 따로 계산할터이니, 걱정허덜 말게.”

말끝에 이생원이 옹녀 년의 젖꼭지를 슬쩍 잡았다가 놓았다. 

“아이, 생원 나리도 참. 겨우 잠잠해졌는디, 또 불을 지르고 그러시오?”

옹녀 년이 코맹맹이 소리를 내며 몸을 비틀었다. 저 불여시겉은 년, 하는 눈빛으로 잠시 바라보던 주모가 말했다.

“나리, 이왕이면 서로간에 기분이 좋은 것이 안 좋겄소?”

“그야 두 말허면 잔소리제? 왜? 내가 준 엽전이 부족한가?”

이생원이 화주 한 잔을 맛 있게 비우고 주모를 바라보았다. 옹녀 년이 얼른 닭 똥구멍을 떼내어 사내의 입 속에 넣어 주었다.

“그것이 아니라, 계집이 기분이 좋아야 나리럴 즐겁게 해줄 것 같애서라.”

“허니, 멋이냐? 꽃값을 미리 달라는 소린가?”

이생원이 좀은 뜨악한 표정으로 물었다. 옹녀가 얼른 나섰다.

“아니구만요, 나리. 주모 아짐씨 말씸언 그동안 꽃값을 많이 떼 멕혀서 허신 말씸이고, 이년언 나리럴 믿는구만요. 불쌍헌 계집의 꽃값을 떼 묵을 분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구만요. 허니, 맴 쓰지 말고 술이나 잡수씨요.”

옹녀 년의 말에 이생원이 전대를 풀었다.

“아니다, 주모의 말도 옳구나. 꽃을 샀으면 꽃값을 치뤄야지.”

이생원이 엽전 닷 냥을 꺼내어 상 밑으로 밀어주었다.

“안 그러셔도 되는디, 기왕에 받았응깨, 아짐씨가 보관허고 있으씨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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