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루지기 <543>원허시면 얼매든지...
가루지기 <543>원허시면 얼매든지...
  • <최정주 글>
  • 승인 2003.08.13 20:39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10. 옹녀의 전성시대<19>

옹녀 년이 엽전 꾸러미를 주모 쪽으로 밀어주며 한 눈을 찔끔했다.

뒷방은 제 년한테 맡기고 그만 가보라는 뜻이었다.

“나리, 필요헌 것이 있으면 부르시요. 옹녀야, 나리 잘 뫼시그라이.”

주모가 문을 닫아주고 돌아섰다.

“너도 묵그라. 화주도 한 잔 씩 헐 줄 아느냐?”

이생원이 닭다리 하나를 쭉 찢어 건네주었다. 

“이 맛 있는 걸 지가 묵으면 입이 불키는디요.”

“니 년이 예뻐서 주는 것이니라. 아까 나는 꼼짝없이 헛 걸음을 하는 줄 알았구나. 내가 젊었을 때는 안 그랬는데, 나이 마흔이 넘고부터는 그놈이 한번 일어섰다가 죽으면 몇 날 며칠 동안 꼼짝을 안 했었니라.”

“집도 부자시고, 보약도 철철이 잡수실 판인디 그요이.”

“그놈은 보약허고는 상관이 없는 갑드라. 의원 영감한테 특별히 그놈한테 좋다는 걸로 지어다 장복을 해도 별 효험이 없드라. 허니, 아침에 벌떡 고개를 쳐든 그놈이 얼마나 반가웠겠냐? 내가 그랬니라. 주막에 당도허자마자 주모부터 안고 밭부터 갈자고 말이니라. 그 생각에 팔령재를 숨가뿐 줄도 모르고 넘어왔구나.”

“헌디, 이 년이 꾸무적대는 통에 거시기 죽었뿌렀고라.”

옹녀 년이 속으로 웃었다. 잡놈 하나가 벌떡 일어 선 거시기 놈을 붙들고 허위허위 팔령재를 넘어오는 모습이 눈에 선히 보여서 였다.

“앞이 캄캄했니라.”

“죄스럽구만요. 잠시나마 나리럴 혼란시럽게 했구만요.”

“아니다, 어떻게든 방사를 했으면 됐지 않으냐? 헌디, 너 다시 한번 요놈을 세울 수 있겠느냐?”

“나리가 원허시면 얼매든지요. 아까막시 이년이 말씸디렸지 않은개비요. 이년 손끝에서 안 살아난 놈이 없었다고라.”

“내가 너를 어찌 이제야 만났는지 모르겠구나. 언제가지 여기에 있을 것이냐? 혹시 함양 쪽으로 옮겨볼 생각은 없느냐? 내가 얘기하면 너를 받아 줄 주막은 함양에도 많니라.”

이생원이 진지한 낯빛으로 말했다.

“이년이 함양으로 옮기면요?”

“너를 내가 날마다 볼 수 있지 않겠느냐?”

이생원의 말에 옹녀가 속으로 픽 웃었다. 이생원이 저승길을 재촉하고 있구나, 싶어서였다. 제 년이 욕심껏 사내를 다루면 단 한번의 방사로도 사내가 고태골로 갈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이생원한테 그 얘기까지 할 것은 없었다.

옹녀 년이 아무 대꾸도 않자 이생원이 다시 말했다.

“아니면 이렇게 하면 어떻겠느냐?”

“어뜨케요?”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