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루지기 <544> 뒷구녕으로 욕을 하건 말건
가루지기 <544> 뒷구녕으로 욕을 하건 말건
  • <최정주 글>
  • 승인 2003.08.14 18:3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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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옹녀의 전성시대 <20>

 

   
 

“내가 함양의 목 좋은 곳에 주막을 하나 차려주면 어떻겠느냐?

나는 네가 보고싶을 때 가끔 들리기나하고, 너는 술을 팔아 먹고 살고. 모잘라는 것은 내가 보태주면 안 되겠냐?”

“글씨라. 서나서나 생각해 보십시다. 이년이 나리럴 잘 모르는디, 덜퍽 따라나서기도 그렇고라, 이 년이 나리 가차이 갔다가 낭패럴 당헐 수도 있고라.”

“낭패라니?”

“나리의 부인께서 가만히 계시겄소? 글고 점잖은 체면에 술집 계집허고 정분이 났다고 소문이라도 나보씨요. 이년이사 밤도망이라도 쳐뿔면 되제만, 나리의 면상은 어찌 되겄소?”

“별 걱정을 다허는구나. 내가 비록 양반짜리라고는 허나, 오입쟁이로 내놓은지 오래니라. 내가 그랬니라. 과거에 몇 번 낙방하고 나서 체면이라는 것을 벗어던지고 나니까, 한 세상 살기가 그리 홀가분할 수가 없드구나. 뒷구녕으로 욕을 하건 말건 귀닫고 사니까, 남의 눈치 안 보여 좋고, 내 맘대로 계집 재미보면서 살아 좋고, 극락이 따로 없드구나. 다만, 요놈이 내 맘같지 않아서 살 맛이 안 났는데, 네가 그리 오묘한 밭을 가지고 있으니, 내가 천금의 재신도 아깝지가 않을 것 같구나. 네가 원한다면 내가 따로 집을 한 채 장만하여 너를 들여 앉힐수도 있느니라.”

“하이고, 빈 말씸이라도 아심찬허구만요. 그런 말씸언 서나서나 허시고 우선 술이나 드시제요. 닭괴기가 식어뿔겄소.”

옹녀 년이 화주 병을 들어 한 잔 권하고 닭고기 한 점을 젓가락에 집어 대령했다.

“식으면 데워오라고 하면 되지. 닭고기 식는 것이 대수냐? 내가 허투로 해 본 소리가 아니니라. 옹녀 너같은 계집이라면 내가 만금을 들여서라도 내 곁에만 두고 싶구나.”

“나리가 원허신다면, 꼭 나리 곁에 안 두어도 언제나 뒷물 깨깟이 허고 나리만 기다림서 삽지요. 이년언 그렇구만요. 나리사 넘의 눈치 안 보신다고 허제만, 이년헌테 쏟아질 욕지거리는 또 어찌 한답니까? 비록 술얼 팔고 꽃얼 팔아묵고 살망정 넘헌테 욕언 안 얻어묵고 싶구만요. 나리가 이년헌테 다른 사내헌테넌술도 팔지 말고 꽃도 팔지 말라고 허시면 그리는 허겄십니다만, 팔령재를 넘어 함양으로 가기넌 어쩐지 껄쩍지근허구만요.”

옹녀 년이 되지도 않을 일을 가지고 사내의 가슴에 바람을 넣는것도 마음에 걸려 아예 각단을 냈다.

이생원도 간절하게 원했던 것이 아니었던 모양인지 이내 체념을 하고 나왔다.

“평양감사도 저 싫으면 그만이라지? 네가 싫다는 데야 어쩌겠느냐? 허면 네 말대로 네가 비록 몸은 인월 삼거리 주막에 있을망정 온전히 나만을 위해서 살 수 있겠느냐? 다른 사내한테는 꽃을 안 팔 수 있겠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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