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루지기 <548>사내 여럿 작살냈겄구나
가루지기 <548>사내 여럿 작살냈겄구나
  • <최정주 글>
  • 승인 2003.08.19 18:2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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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옹녀의 전성시대 <24>

주모가 입을 벌리고 흐 웃었다. 이것이 웬 횡재냐 싶은 모양이었다. 이생원이 불여시년한테 푹 빠져있으니, 당분간 쌀 몇 가마 값은 충분히 뜯어내겠구나, 싶은 것이 분명했다.

“내가 불여시면 아짐씨넌 백여시겄소이.”

옹녀 년이 한 마디 내뱉았다. 따지고 보면 제 년 때문에 몇 푼의 엽전일망정 손에 넣었으면 애썼다든지, 아니면 고맙다는 인사를 해야지, 실컷 품 팔고 나온 사람한테 불여시라니, 기분이 상한 것이었다.

“니 년 말이 맞다. 불여시허고 백여시가 만냈응깨, 어디 한번 잘 해보자.”

“멀 잘해라?”

옹녀 년이 주모의 속내를 뻔히 짐작하면서도 불퉁스레 물었다.

“사내란 것이 입이 무건 것 같애도 사내처럼 입이 싼 짐승도 없니라. 특히나 계집 일얼 가지고넌. 두고보면 알 것이다만, 하루도 못 돼서 인월 삼거리 주막에 요상헌 계집이 왔다는 소문이 팔령재럴 넘을 것이니라.”

“요상시런 계집이라고라?”

옹녀 년이 눈을 크게 뜨고 주모를 바라보았다.

“아, 무디어진 쟁기날얼 잘 세우는 계집이라고 말이니라. 내가 시방사 말이다만, 이생원이 반고자가 된지가 한참이니라.

엽전 몇 푼이 탐이 나서 강아지맨키로 연장을 핥아가꼬 제우제우 세워놓아도 문전에만 들면 고개럴 숙여뿌렀니라.”

“그랬소? 이 년헌테넌 안 글든디. 마른 장작개비맨키로 빳빳허든디요이.”

“그래서 니년이 요상시럽다는 것이니라. 니년 거시기가 다른 계집덜허고는 틀린개비다.”

“사내덜이 거시랭이가 수백마리 들어 앉았는갑다고 허기넌 헙디다만.”

“천하의 색녀가 틀림없구나. 그것만 가지고도 어디가서 밥언 안 굶겄다.”

주모가 옹녀 년을 찬찬히 바라보았다. 어디서 이런 보물단지가 저절로 굴러들어 왔는가, 하고 감탄하는 눈빛이기도 했고, 니 년 면상을 보니, 사내 여럿 작살냈겄구나, 하는 속내도 들어있는 눈빛이었다.

“왜라? 내 얼굴에 멋이 묻었소?”
“아니다. 니가 신통방통해서 근다. 딴 맘 묵지 말고 나허고 오래오래 있자이. 너만 있으면 이생원언 물론이고, 함양이며 인월 운봉의 잡놈들은 다 끌어모으겄구나.”

“흐나, 너무 큰 개대는 허지 마씨요. 이년이 역마살이 있어, 언제 훌쩍 보따리럴 쌀랑가 모른깨요.”
옹녀 년의 말에 주모가 화들짝 놀라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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