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루지기 <549>색시가 존깨 글제
가루지기 <549>색시가 존깨 글제
  • <최정주 글>
  • 승인 2003.08.20 16:4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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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옹녀의 전성시대 <25>

“보따리럴 싸?”

“이 년이 근당깨요. 있을 때는 잘 허다가도 한 번 맴이 틀어지면 천하없어도 안 돌아선당깨요. 모르겄소. 시방언 아짐씨도 좋고, 함양 이생원나리도 좋고 허요만, 언제 천하만사가 귀찮아질랑가요. 그러면 부처님이 와서 말려도 내 발얼 못 붙드요. 며칠얼 있을랑가 몰라도 있는 동안에넌 아짐씨헌테 손해럴 안 끼칠 것이요. 허나 내가 가고 싶을 때면 언제던지 갈 것인깨 그리 아시씨요.”

“될 수 있으면 오래오래 있어.”

주모가 간절한 눈빛으로 말했으나 옹녀 년이 고개를 내저었다.

“아무리 길어도 이레넌 안 갈 것이구만요.”

“이레? 혹시 이생원 나리의 말대로 함양으로 옮길라고 그러는겨?”

주모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웬 보물인가 했는데, 겨우 이레라니,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 모양이었다.

“이년언 성질이 지랄같애서 한 남정네만 섬기고넌 못 사요. 그럴라면 펄새 그럴만헌 사내 하나 꿰차고 마님소리는 못 들어도 아씨 소리는 들음서 살았을 것이요.”

옹녀 년이 말했다.

“허면 왜?”

“역마살이 있다고 안 했소? 허나 걱정허던 마시씨요. 사흘이 됐건 이레가 됐건, 한 달 맞잽이 두달맞잽이넌 될 것이요, 아짐씨헌테넌.”

“누가 꼭 돈땜시 글간디? 색시가 존깨 글제. 만낸지 한나절도 안 되었는디, 십년지기처럼 정이 들라고 글만.”

“고맙소. 그리 생각해주신깨.”
옹녀 년이 생긋 웃었다. 그때였다. 안방에서 주모주모,하고 부르는 정사령 놈의 목소리가 들렸다. 주모가 으이그, 저 깍다구겉은 놈, 하고 중얼거리며 몸을 일으켰다.

“멋 땜시 바쁜 사람얼 자꼬만 부른다요?”

주모가 한 발짝 내딛다가 두 눈을 흘기며 마주 소리를 질렀다.

“목이 마르구만, 물 한그럭 갖다주게.”

“알았구만요. 물괴기 삼시랑얼 타고 났능가? 먼 물얼 찾아싼다요.”

주모가 물동이에서 물을 한 사발 떠내며 쫑알거렸다. 들락여봐야 고린 땡전 한 푼 안 떨어지는 정사령놈이 귀찮다는 기색이 역력했다.

“일로 주씨요. 내가 갖다주제요.”

옹녀 년이 물사발을 빼앗듯이 받아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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