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루지기 <553>연장이 부실해서...
가루지기 <553>연장이 부실해서...
  • <최정주 글>
  • 승인 2003.08.25 19:1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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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옹녀의 전성시대 <29>

“그러지 마소. 내 자네가 섭섭케넌 안 헐 것인깨, 다먼 며칠이라도 있어보게.”

“글씨요이. 이 년 속얼 이 년도 모른당깨요.”

옹녀 년이 일부러 시들한 표정을 지었다. 처음 들어올 때에야 어떻게든 정사령 놈을 만날 때까지는 버텨보자는 생각에 며칠이라도 있을 것 처럼 했지만, 정사령을 만난 이상 시간을 끌 것도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떻게든 정사령 놈을 산내골 제 년의 집으로 끌어들이기만하면 일은 다 된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사내라면 서방님만으로도 족했다. 물건도 물건같지 않은 이생원이나 정사령놈한테 거짓 감창소리를 내면서 시달릴 필요가 없었다. 그까짓 엽전 몇 푼이 탐이 나서는 더더구나 아니었다.

“이생원을 봐서라도 며칠만 참게. 저 양반이 자네 살맛을 봤응깨, 곡석가마니에 쥐새끼 드나들듯이 드나들 판인디, 자네나 내가 맘만 묵으면 쌀 몇 가마니는 앉은 자리에서 벌 수도 있는디, 그 횡재를 어찌 놓친다는 말인가?”

“이년이 시방 간다고는 안 했소. 갈지도 모른다는 소리제, 간다는 소리는 아니었소.”

“고맙구먼, 고마워. 자네가 탁배기 한 되박을 팔아 이문이 반 푼 남으면 그 중에 반은 자네헌테 줌세. 헌깨, 간다는 소리넌 말게. 내 간이 철렁 니려앉았구만. 알겄능가?”

“나럴 나도 모른당깨요. 시방 맘이사 아짐씨허고 오래오래 있고 싶소만, 병 든 서방님이 참말로 나럴 기달리는구만요.”

“서방님이 있기는 참말로 있는겨? 이생원허고 수작얼 본깨 아니든디?”

주모가 알 수 없다는 표정을 짓고 찬찬히 훑어보았다.

“주막에서 만낸 남정네였제요. 맴씨가 고와 한 평생 살라고 몸얼 ?겼는디, 한 이불 덮은지 일년만에 병들어 누웠구만요.”

“자네 팔자도 참, 죽어라, 죽어라, 허능구만.”

주모가 혀를 끌끌 찰 때였다. 정사령 놈이 아, 주모 멋허능가? 하고 소리를 질렀다.

“다 됐소. 쪼깨만 지달리씨요.”

주모가 서둘러 술상을 챙겨 가지고 안방으로 들어갔다. 정사령하고 술을 함께 마시기 위해서가 아니라 술값을 선금으로 받기 위해서였다. 이내 방안에서 술값부터 주씨요, 하는 주모의 목소리와 자네가 나헌테 이럴 수가 있능가, 하고 불퉁거리는 정사령 놈의 목소리가 새어 나왔다. 그러나 결국 정사령 놈이 술값을 치뤘는지 이 년도 어지간만허면 나리헌테 이러겄소? 안 이러면 목구녕에 풀칠얼 허게 생겨서 그요, 하고 주모가 너스레를 떠는 소리가 들렸다. 정사령 놈의 연장이 제대로 밭을 갈 수 있어도 주모가 저리 푸대접일까, 하고 옹녀 년이 생각하는데 정사령 놈이 서방님 얘기를 꺼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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