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루지기 <554>찢어죽여도 션치 않을 놈
가루지기 <554>찢어죽여도 션치 않을 놈
  • <최정주 글>
  • 승인 2003.08.26 17: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10. 옹녀의 전성시대 <30>

“변강쇤가, 똥강쇤가 허는 놈 소문언 없등가?”

“없등만요. 아, 그 사람 소문을 들으면 내가 젤 먼첨 나리헌테 통기허겄다고 안 했소?”

 찢어죽여도 션치 않을 놈, 주모가 그놈 있는디럴 알아가꼬 나헌테 알켜주면 내가 쌀가마값이나 내어놈세. 알겄능가? 손님이 오면 귀럴 쫑긋 세우고 잘 들어두게이.”

“여부가 있십니껴? 안 그래도 글고 있구만요. 헌디, 변강쇠 그 사람이 하늘로 솟았능가 땅으로 꺼졌능가 봤다는 사람이 없구만요.”

주모의 말에 옹녀 년이 안도의 한숨을 푹 내쉬었다. 음전네라는 정사령 놈의 마누라한테까지 숨긴 일을 새삼 사내놈환테 까발리지는 않을 것이라고 믿었으면서도 싸디 싼 것이 계집의 입이라고 부지불식간에 그 사내가 어디어디에 산다고 헙디다, 하는 말이 나올까 가슴이 오마조마했는데, 주모가 말 실수를 하지 않은 것이었다.

옹녀 년이 언제 쯤이나 정사령 놈이 제 년을 부를까 하마하마 기다리고 있는데, 정사령이 부억에 있는 계집은 어찌 된 것이냐고 묻는 소리가 어렴풋이 들렸다.

“아까막시 말허지 않습디까? 병 든 서방님얼 뫼시고 사는 불쌍헌 여자라고라. 헌디. 왜 그걸 물으시요?”

주모가 옹녀 년 들으라는 듯 목소리를 불쑥 높였다.

“눈 밑이 거무스럼허고, 허리가 호리낭창헌 것이 사내깨나 밝히겄든디, 서방이 병들었다면 밤마다 독수공방이겄구만.”

"왜라? 저 색시가 독소공방허면 나리가 풀어줄라요?“

“못 헐 것도 없제. 몸얼 팔러 나온 것도 아니람서? 어뜬가? 내가 몇 푼 줄 것인깨, 술시중이나 들라고 해볼랑가?”

정사령 놈의 말에 주모가 대꾸했다.

“내 주막에 설거지만 허기로 들어왔소. 아매도 그런 말얼 허면 십리넌 도망얼 가뿌릴 것이요.”

“누가 잡아 묵간디, 도망얼 가? 말이나 한번 건네 볼랑가?”

“허면 얼매럴 주실라요? 쪼깨 전에 함양의 이생원이 닷냥얼 준다고 해도 고개럴 내젓습디다. 헌디, 몇 푼이라고라?”

“시방언 가진 것이 없응깨, 외상으로 허면 안 되겄능가? 낼이라도 내가 한 댓 냥 가져다 줄 것인깨, 불러나 보소. 자네 입담에 안 넘어갈 계집이 있겄능가?”

정사령 놈의 말에 주모가 잠시 미적거렸다. 어차피 옹녀 년이 꽃도 파는 계집이라는 것을 알고 있지만, 처음부터 예, 그럽시다, 하고 나설 수가 없는 모양이었다. 옹녀 년은 주모가 그것은 안 된다고 펄펄 뛰지 않은 것만도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주모가 무어라고 하건 계집 탐 많은 정 사령 놈 쯤 후려치는 것은 누워 떡 먹기 보다 쉬운 일이었지만, 될 수 있으면 함양의 이생원이 잠에서 깨어나기 전에 정사령 놈과 각단을 내고 싶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