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루지기 <555>꽃값언 안 줄 놈인깨...
가루지기 <555>꽃값언 안 줄 놈인깨...
  • <최정주 글>
  • 승인 2003.08.27 17:5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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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옹녀의 전성시대 <31>

이생원이 깨어나면 다시 속곳을 벗기자고 덤빌지도 몰랐고, 병든 서방님을 모시고 사는 얌전한 계집 노릇을 한 것이 들통이 나면 정사령 놈이 쉬운 여자로 보고 덤빌지도 모를 일이었다.

비록 혼신의 힘을 다한 것은 아니었지만, 두 번의 방사와 화주 몇 전에 취해 한나절은 죽은 듯이 잠들어 있을 판이었다. 이생원이 잠에서 깨어 일어나 찾기 전에 어떻게든 정사령 놈과의 일을 마무리 짓고 주막을 떠나야하는 것이었다.

옹녀 년이 이럴까 저럴까, 궁리을 하고 있는데 제법 묵직한 등짐을 진 사내 세 명이 사립을 들어섰다.

“주모, 주모, 있는가?”

사내 중의 하나가 큰 소리로 부르자 주모가 아이구, 오랫만에 오시네요, 어쩌고 하면서 부르르 쫓아나갔다.

“팔령재럴 넘어야하니, 서둘러 장국밥 세 그릇 말아주게. 우선 탁배기부터 두어되박 올리고.”

“예, 예, 글고본깨 낼이 함양장이요이.”

주모가 사내들을 아랫방으로 들여놓고 부억으로 돌아왔다.

“주모, 여그 탁배기 한 병 더 가져오게.”

새로 온 사내들한테 코맹맹이 소리를 내는 주모가 못마땅했는지 정사령 놈이 덩달아 큰 소리를 쳤다.

“으이그, 저 자구. 색시가 술 한 병 가져다 주게.”

“예, 그러지라.”

옹녀 년이 기다렸다는 듯이 병에 탁배기를 채웠다. 

“술값언 몰라도 꽃값언 내가 상관 안 헐 것인깨, 저 자구가 보채드래도 색시가 알아서 허소. 먼 소린고허니, 색시가 싫으면 매정허게 뿌리쳐도 된다는 뜻이구만. 내 집에 안 들락이면 더 존 사람인깨. 애당초 꽃값언 안 줄 놈인깨, 손도 못 대게 허든지.”

“알겄구만요.“

옹녀 년이 속으로 싱긋 웃으면서 탁배기 병을 들고 안방으로 들어갔다.먼저 들여놓은 탁배기 한 병을 다 비우고 벽에 기대어 숨을 색색거리고 있던 정사령 놈이 벌떡 일어나 술상 앞으로 당겨 앉았다.

“기왕 들어왔응깨 앉제.”

병든 서방일망정 서방이 있다고 그래서 그런지 정사령이 막말이 아니라 하대를 했다.

“허면 한 잔만 따라디리겄구만요.”

옹녀 년이 엉거주춤 앉아 술병을 들었다. 정사령 놈이 술잔을 들어 내밀면서 계집의 손을 슬쩍 더듬었다. 흠칫 놀라는체만 했을 뿐 이번에는 술병을 떨어뜨리지는 않았다.

“천천히 드시씨요.”

술병을 내려놓고 엉덩이를 떼는 옹녀 년의 손목을 정사령 놈이 꽉 움켜 잡았다. 하이고, 나리, 어쩌고 하면서 옹녀 년이 화들짝 놀라는 체 호들갑을 떨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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