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루지기 <561>빌어 묵을 오널 똥얼 밟았구만
가루지기 <561>빌어 묵을 오널 똥얼 밟았구만
  • <최정주 글>
  • 승인 2003.09.03 17:5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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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옹녀의 전성시대 <37>

“빌어 묵을, 내가 오널 똥얼 밟았는개비구만. 병 든 서방헌테 열부노릇험서 사는 것이 기특해서 씨다듬어 준 것이 멋이 그리 홰낼 일이라고. 구정물 바가지럴 뒤집어 썼구만이.”

정 사령 놈이 제 손으로 화주 한 잔을 따라 단숨에 비워냈다.

옹녀 년이 말했다.

“미안시럽소, 나리. 서방님 말고넌 따로 남정네의 손얼 탄 일이 없어서 이년이 도에 넘치게 홰럴 냈는갑소. 천천히 드시씨요. 이년언 나가볼랑구만요.”

“나갈라고?”

“쪼깨만 있으면 해가 질판인디, 얼렁 설거지 끝내놓고 서방님헌테 가봐야지라.”

옹녀 년이 방을 나와 부억으로 들어갔다. 방아에서 일어 난 일을 다 듣고 있던 주모가 물었다.

“참말로 갈 것이여?”

“가봐야겄구만요. 더 있다가넌 정사령헌테 먼 일얼 당헐지 모르겄구만요.”

“함양 이생원언 어떡허고?”

“아까막시 살풀이가 실퍽했응깨, 이 년이 없다고 아짐씨헌테 머라고넌 안 헐 것이구만요.”

“함양으로 따라갈 것 처럼 말허드니.”

“이년이 한 사내헌테만 목매달고넌 못 사는구만요. 허면 이생원헌테 받은 꽃값이나 주시씨요.”

“아, 줘야제. 헌디 언제 또 올 것이여?”

“모르제라, 언제올지.”

“내 생각에넌 어채피 지달리는 사람도 없는 것 같은디, 여그서 나랑 살았으면 좋겄구만.”

주모가 함양 이생원한테 받은 엽전 꾸러미에서 몇 닢을 빼내고 건네 주었다.

“‘더 있고 싶어도 방안의 쥐새끼 뵈기 싫어 못 있겄구만요. 내 그리 부실헌 연장언 또 첨이요. 그걸로 밭얼 갈겄다고 뎀빌판인디, 생각만해도 소름이 돋소.”

옹녀 년이 고개를 내저었다. 

“그런다고 그냥 말 정사령이 아니구만. 꼴에 고집언 있어가지고 뒤가 끈질기당깨.“

“그냥 안 말면 어쩐다요?”

‘나럴 귀찮게 헐 것이랑깨. 이녁이 어디사냐? 어디로 간다고 허드냐? 꼬치꼬치 캐물을 판인디, 사타구니에 밤송이를 넣고 전디제, 저 놈의 닥달에는 못 전딘당깨.“

“허면 적당히 둘러대씨요. 이년이 대강언 말해주었구만요. 저그 산내골에 산다고라. 내 집에서 쪼깨만 더 가면 은대암이라고 암자가 있소. 그것꺼정 말해줄 것은 없을 것이오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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