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루지기 <564>바지 앞춤이 터지겄다고
가루지기 <564>바지 앞춤이 터지겄다고
  • <최정주 글>
  • 승인 2003.09.07 15:0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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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옹녀의 전성시대 <40>

“하이고, 계집의 입언 믿을 것이 못 된다드니, 그 말이 꼭 맞소이. 채 한나절도 안 되었는디, 그걸 조삼조삼 까발기다니요.”

“주모탓언 헐 것이 없다. 설령 니 년 말대로 병 든 서방과 함께 산다고 해도 내가 따라왔을 것인깨.”

“머시라고라? 서방있는 년얼 따라온다고라? 눈이 뒤집혔는갑소이. 이 년이 잘 난 것이 하나도 없는디, 벙거지꺼정 쓴 나리가 서방있는 년얼 넘본다고라?”

“그만큼 니 년이 풍기는 음기가 지독했니라. 아까부터 고개럴 빳빳이 쳐들고 있던 이놈이 안즉도 그 모냥이다. 보그라, 이 놈얼 보그라.”

정사령 놈이 금방 바지춤을 까발길 듯이 설치는데, 옹녀 년의 눈에 사립 밖에서 얼핏 강쇠 서방님의 머리끝이 스쳐갔다. 서방이 가까이 있다면 이제 마음놓고 방으로 들어가도 될 것이었다.

“하이고, 남새시럽소. 오다가다 동네 사람이라도 보면 어쩔라고 그런다요?”

“동네 사람이 보면 대수더냐? 어차피 니 년언 주막계집이고, 니년의 그런 사정을 모르는 동네 사람이 있겄느냐? 씨잘데기 없는 걱정언 허덜 말고 얼릉 방으로 들어가자. 잘못허면 바지 앞춤이 터지겄구나.”

정사령 놈이 옹녀 년의 손을 잡고 방으로 끌어들일 듯이 서둘렀다.

‘흐, 연장도 연장겉지 않을 걸 가지고 머시 어쩌고 어쪄? 바지 앞춤이 터지겄다고? 별 동냥치겉은 소리럴 다 듣겄구만이.’

옹녀 년이 속은 놀놀하여 중얼거리다가, 한숨을 푹 내쉬었다.

“너넌 낮에부텀 웬 한숨이 그리 잦냐? 먼 사정인지넌 몰라도 나헌테 다 말해보그라.”

정사령 놈이 인심이라도 쓰는듯 말했다. 

“이년이 참말로 주막얼 굴러댕기던 계집이먼 얼매나 좋겄소.”

“허면 아니라는 말이더냐?”

“생떼겉은 서방님이 펄펄 살아계시능구만이라. 이 년언 주막얼 굴러댕기는 계집도 아니고, 병 든 서방을 뫼시고 사는 불쌍헌 계집도 아니구만요. 기운이 상머슴겉은 서방님이 계시는구만이라.”

“그 말이 참이더냐?”

“나리헌테 멀 얻어묵을 것이 있다고 거지꼴얼 허겄소? 인월주막에서 나리럴 보고 이년도 겁나게 맴이 땡겼소. 헌디, 황소겉은 서방님 땜이 차마 속곳얼 못 내렸구만요.”

“황소겉은 서방이 어찌 지 여편네럴 주막으로 내돌린다냐?”

“원래 지리산 포수인디, 산짐승 몇 마리 잡으면 주막에서 투전으로 다 날리고 돌아오지라.한번 집얼 나가면 두 달이건 석달이건 나몰라허는디, 이 년이 비록 주막 계집언 아닐망정 주막계집보다 더 험허게 살았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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