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루지기 <565> 급헌 불부텀 끄자고
가루지기 <565> 급헌 불부텀 끄자고
  • <최정주 글>
  • 승인 2003.09.08 18:4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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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옹녀의 전성시대 <41>

서방님이 비록 병자넌 아닐망정 병자보담도 더 이년얼 독수공방 시켰소. 허니, 한숨이 안 나오겄소.”

“거 어떤 놈인가 참으로 싸가지 없는 놈이로구나. 걱정헐 것 없니라. 이번에 돌아오면 내가 운봉관아로 잡아다가 단단히 영금얼 뵈어가꼬 내보내마.”

“하이고, 그러지 마시씨요. 지리산 호랭이럴 뽄으로 잡는 줄 아시오?”

옹녀 년의 말에 정사령 놈이 눈을 크게 떴다.

“지라산 호랭이럴 잡았어?”

“그것도 한 마리가 아니라 세 마리나 잡았당만요. 이년이사 호피꼬리도 귀경헌 일이 없소만, 변포수라면 이 근방 사람덜언 다 압디다. 호랭이 잡은 포수라고라. 성질언 또 얼매나 무선디요. 호랭이 앞에서도 눈 하나 깜짝허지 않는당구만요. 아매 나리가 잡아가겄다고 허면 나리럴 호랭이 잡는 창으루다 가심패기럴 찔러 쥑이겄다고 설칠 것이구만요.”

“지 놈 목심이 둘이 아닌 담에야 관물 묵는 나헌테 그러겄느냐? 아무 걱정말그라. 내게도 다 생각이 있느니라.”

“나리가 생각언 먼 생각이다요? 넘의 서방 일에.”

“너처럼 예쁜 계집을 나몰라허는 사내면 볼짱 다 본 놈이 아니드냐? 그 놈은 버리고 나허고 살자. 운봉 어디 쯤에 집 한 채 장만하여 함께 살자꾸나. 비록 아랫녁도 안 맞촤보았다만, 내가 너를 책임지마. 헌깨, 여그꺼정 온 성의를 봐서라도 니가 나럴 내치면 안 되제이.”

“하이고, 이 일얼 어쩐디야? 서방님언 내처 기별이 없다가도 뜬금없이 나타나고 허는디. 잘못허다가는 이년언 물론 나리꺼정도 목심 부지허기 심들 판인디.”

옹녀 년이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시늉으로 한숨만 푹푹 내쉬자 정사령놈이 서둘렀다.

“걱정언 붙들어매래도 그러는구나. 어서 방으로 들어가자. 일단은 이놈부터 죽이고 보자.”

“나리가 참말로 이년의 뒷감당얼 해주실라요? 내 목심얼 구해주실라요?”

“남아일언언 중천금이라고 했니라.”

“모르겄소. 나넌 모르겄소. 이년얼 쥑이든지 살리든지 나리가 알아서 허시씨요.”

옹녀 년이 못 이긴 체 정사령 놈을 따라 방으로 들어갔다. 

“나리, 저녁얼 준비헐 것인깨, 쪼깨만 앉아 있으씨요이.”

정사령놈을 방바닥에 앉히고 옹녀 년이 짐짓 말했다.

“먼 소리냐? 급헌 불부텀 끄자고 안 했느냐? 밥이사 날마다, 끼니마다 묵는 것인디, 한 끼 쯤 걸르면 어쩌고 미루면 어쩐다냐?”

말끝에 정사령 놈이 계집의 손을 확 잡아 챘다. 계집이 쓰러지듯 사내의 가슴으로 안겨 들었다. 그런 계집의 귓가로 발자국 소리가 어렴풋이 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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