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루지기<568>꼼짝 안는 밭고랑 연장
가루지기<568>꼼짝 안는 밭고랑 연장
  • <최정주 글>
  • 승인 2003.09.15 18:2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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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옹녀의 전성시대 <44>

“임자, 펄쌔 잠이 들어뿌렀능가? 흐참, 몇 달만에 서방님이 오셨는디, 반갑다고 인사도 안허고 잠이 들었능가? 얼렁 문 좀 열어보소.

내가 호랭이럴 한 마리 잡아 임자의 비단옷얼 한 벌 사가꼬 왔구만.”

강쇠 놈의 말에 정사령 놈이 온 힘을 다하여 엉덩이를 들어올렸으나 쟁기날은 빠지지 않았다.

“어뜨케 좀 해보그라. 니 서방놈이 온 모양이구나.”

정사령 놈이 겁에 질려 작은 소리로 서둘렀다.

“누가 안 빼주고 싶어서 안 빼준다요? 쟁기날언 쟁기 주인이 빼야헌당깨요. 아, 얼렁 빼보씨요. 안 그러면 나리나 이년이나 저 호랭이겉은 서방님헌테 맞아 죽소.”

옹녀 년이 제 년도 목소리를 낮추어 안타까이 속삭였으나, 쟁기날은 빠지지 않았다.

“잠이 들어도 단단이 들었는갑네.”

문밖의 강쇠 놈이 혼자 중얼거리다가 임자, 나 왔당깨, 하고 고함을 버럭 지르며 문을 벌컥 열었다.

방안의 두 년놈이 고개만 돌려 바라보았다. 

“아니, 이것들이 시방 멋허는 꼬라지들이랴? 이 년놈들이 시방 아랫녁얼 맞추고 있는 것이 아니여?”

기웃이 들여다 보며 방안의 꼴을 확인한 강쇠 놈이 미리 준비라도 해두었던지 지게 작대기를 들고 방을 들어왔다.

경황중에도 정사령 놈이 강쇠 놈의 목소리를 알아들었는지 아는 체를 했다.

“아니, 네 놈은 변강쇠 놈이 아니더냐? 운봉 주막에서 주모럴 허리병신을 맹글아 놓고 도망친 변강쇠 놈이 아니드냐?”

“내가 변강쇠인 것언 맞소만 댁네는 누구시오?”

강쇠 놈이 작대기를 치켜들고 기웃이 들여다 보는 시늉을 했다.

“이눔아, 내가 운봉관아의 정사령이니라. 안 그래도 내가 니눔을 찾았는디, 잘 만냈구나. 니 눔이 내 여편네럴 겁탈했겄다?”

“겁탈은 무신 겁탈이다요? 아, 어떤 병신 알짜리겉은 사내가 속곳 벗고 뎀벼드는 계집얼 모른체끼 허겄소? 하도 사정얼 허고 뎀비는 통에 적선허는셈치고 두어 번 보듬아 주었구만이라. 헌디, 그 아짐씨가 나리의 여편네였소?”

“오냐, 이놈아. 개천가의 외따로 떨어진 집에 사는 그 계집이 내 계집이었니라. 니눔언 오널 내 손에 죽는 줄 알그라.”

정사령 놈이 입술을 악물고 엉덩이를 들어올렸으나 밭고랑의 연장은 꼼짝을 안 했다. 두려움 때문인지 아니면 경황 중에도 밭갈리는 재미에 그랬는지 계집이 두 다리로 사내의 두 다리를 감싸안아 조이는 통에 옴짝 달싹을 할 수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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