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루지기 <573>그 밭에 싻이 틀란가도
가루지기 <573>그 밭에 싻이 틀란가도
  • <최정주 글>
  • 승인 2003.09.21 16:2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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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옹녀의 전성시대 <49>

“알겄구만요. 머지 않아 시안도 되는디, 어뜨케던 묵고 살 것언 장만얼 해놔야 안 쓰겄소? 이녁 밭에 씨꺼정언 안 뿌리그로 헐 것인깨, 걱정허던 마시씨요.”

“뿌려도 괜찮구만. 그 밭에 싻이 틀란가도 모르고.”
강쇠 놈의 시큰둥한 말투에 남색 치마에 노랑 저고리를 걸치던 옹녀 년이 뜨악한 낯빛으로 내려다 보았다.

“가지 말끄라?”
“가랑깨.”
“이녁 말에 가시가 백혀있는 것 같애서 그요.”

“그런다고 임자럴 찌르기사 허겄는가?”

“나 혼자 잘 묵고 잘 살자고 허는 짓이 아니란 건 알제요? 오로지 서방님이 몽둥이질 당헌 보개피 땜에 그런다는 것언 알제요?”

“하먼, 알제.”

강쇠 놈이 옹녀 년의 성질에 나 안갈라요, 하며 나자빠질까 싶어 낯빛을 풀고 고개까지 끄덕였다.
“헌디, 이녁언 어쩔라요?”

“어쩌기넌 멀?”

“방안퉁수 노릇이나 헐라요?”

“글씨. 낭중에 모른체끼허고 마천 삼거리 주막에나 나가보까? 임자허고 나허고 서방각시라는 것만 숨기면 될 것이 아닌가?”

강쇠 놈의 말에 옹녀 년이 손을 홰홰 내저었다.

“하이고, 그것언 안 되능구만요. 마천 삼거리 주모가 이녁헌테 눈독얼 단단히 디리고 있는디, 거그 나타나기만허면 당장에 아랫녁 맞추자고 뎀빌 것이구만요.”

“맞추자면 맞추제, 머. 언제넌 우리가 그런 것 따짐서 살았던가?”

강쇠 놈의 말에 옹녀 년이 방바닥에 털썩 엉덩이를 내려놓았다. 강쇠 놈이 왜 그런가, 하는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이년언 안 갈라요. 서방님이나 가시씨요.”

“안 가?”

“안 갈라요. 술 취헌 개라고, 조선비가 술이 취허면 이년헌테 먼 짓얼 허자고 뎀빌지 모르는디, 옆방에 서방님 두고 이년이 어찌 조선비럴 어뜨케 구어 삶겄소.”

“엊저녁에넌 잘만 허등만. 서방이 두 눈 부릎뜨고 있는디도 정사령놈허고 잘만허등만. 눈얼 하얗게 까뒤집고넌 엉덩이럴 뜰썩거리다가 숨얼 색색거리기도 허고. 낭중에넌 까박 자질라지등구만. 그런 임자가 옆방에 내가 있다고 헐 짓얼 못허겄능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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