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루지기 <577> 뒷방에서 마실까?
가루지기 <577> 뒷방에서 마실까?
  • <최정주 글>
  • 승인 2003.09.25 18:2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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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옹녀의 전성시대 <53>

“모르겠다. 내가 왜 너를 눈이 빠져라 기다렸는지, 선친이 작고하셔서 장례를 치루면서도 내 머리 속에는 온통 네 생각 뿐이었니라.”

조선비가 옹녀 년의 손을 잡고 마루로 끌어올렸다. 그 손을 조심스레 빼내며 옹녀 년이 말했다.

“이년도 나리 댁에 애사가 있었다는 말언 들었구만요. 그래, 얼매나 상심이 크셨습니까요.”

“그리 말해주니 고맙구나. 들어가자, 방으로 들어가자.”

조선비가 다시 옹녀 년의 손을 잡아 끌었다. 옹녀 년이 주모를 돌아았다.

“기왕에 술얼 드시려면 뒷방으로 가시제요. 들고나는 사람덜이 많은디, 안방에서야 편헌 맴으루다 술얼 마실 수가 있간디요.”

주모가 옹녀 년의 눈치를 살피며 말했다.

“허허허, 그럴까? 뒷방에서 마실까? 주모, 뒷방언 잘 치워 놨겠지?”

조선비가 토방으로 내려서 신발을 신으며 주모에게 물었다.

“하먼이요. 안 그래도 조선비님께서 뒷방 차지럴 허실 것 같애서 깨깟이 치워놨습지요. 어서 드시제요.”

“허면 술 한 상 잘 차려 가져오게.”

조선비가 소매 속에서 엽전 한 꾸러미를 꺼내어 주모 앞에 툭 던져주었다.

“주모가 미리 맡아놓게.”

“하이고, 고마우셔라. 염려허시덜 말고 어서 드시제요. 일꾼얼 시켜 닭도 한 마리 잡아놓았고요, 소금 속에 박아 놓은 간조구도 한 마리 푹 꿔놨구만요.”

주모가 엽전꾸러미를 집어 들고 황감한 눈빛으로 바라보며 대꾸했다.

“어서 들어가자.”

조선비가 옹녀 년의 허리를 안고 뒷방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옹녀 년이 조금 버티는듯하며 조선비를 올려다 보았다.

“나리, 사실 이년언 주모 아짐씨가 일손 쪼깨만 거들어달라고 해서 왔는디요이. 나리허고 술마실라고 온 것이 아닌디요이. 더군다나 애사럴 당헌 나리허고 술얼 마신다는 것이 쪼깨 그렇구만요.”

“허허, 먼 소리냐? 오일장에 삼우제 끝난지가 언젠디, 아까 내가 말 안 했느냐? 장례를 치루면서도 온통 네 생각 뿐이었다고, 너를 일각이 여삼추로 기다렸다고. 암 소리 말고 들어가자.”

조선비가 서둘렀다. 사내가 그러면 그럴수록 계집의 엉덩이가 뒤로 빠졌다.

“그래도, 이것언 사람의 도리가 아닌디요이. 나리의 선친얼 생각허면 헐 짓이 아닌디요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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