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주시-공무원 노조 갈등
전주시-공무원 노조 갈등
  • 임병식기자
  • 승인 2003.10.28 16: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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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주시와 공무원노조의 갈등이 표면화된지 오늘로 꼭 보름째다. 시간이 흐르면서 갈등은 해소되기보다는 전면전 양상을 띠고, 한층 복잡하게 진행되고 있다. 민주노총과 전공노가 가세하고, 천막농성·준법투쟁·시장 퇴진운동 등 시위 강도가 높아지고 있다. 대화는 실종된 채 외부 세력과 대리전으로 확대되고, 또 자존심 싸움으로 변질되고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높다.

 15일 폭력사태 발생 이후 가담자에 대한 고발과 노조원 구속 등을 지켜보면서 당혹감을 감추지 않았던 집행부와 노조는 장기전을 기정사실로 받아들이는 모습이다. 그러나 사태가 장기화될 경우 집행부와 노조 모두 비판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시정 공백의 가장 큰 피해자는 시민이기에 따가운 눈총을 감수하면서까지 대치 국면을 고수하기란 쉽지 않기 때문이다.

 노조 내부 갈등도 만만치 않다. 구속자 중 1명이 노조 탈퇴서와 양심선언문을 재판부에 제출하고, 강경노선을 비난하는 일부 직종을 중심으로 탈퇴가 논의가 표면화하는 등 예측하기 어려운 양상으로 전개되고 있다.

 집행부와 노조의 갈등은 ‘불법 단체’라는 표현을 놓고 촉발됐다. 전주시는 14일 ‘시립예술단 연봉제 폐지’와 ‘단체교섭안 수용’을 촉구하는 민주노총 전북본부의 기자회견에 앞서 공인노무사와 노동부의 자문을 담은 자료를 언론에 배포했다.

 이 자료 중 “공무원노조는 불법 단체이므로 단체교섭 요구는 당연히 거부해야 한다”는 공인노무사의 자문이 직접적인 도화선이 됐다. 노조는 관련 법이 제정 중에 있고, 실질적으로 활동하는 공무원 노조를 ‘불법 단체’로 표현한 것은 전주시가 공무원 노조의 실체를 인정하지 않겠다는 의도라며 즉각 반발했다.

 집행간부 27명이 자료를 작성·배포한 행정관리과장에게 격렬하게 항의하는 과정에서 흥분한 일부 노조원이 책상을 뒤엎고, 책상 유리를 깨는 등 집단 행동을 했다. 이날 노조원의 행동은 언론을 통해 보도됐으며, 우발적 행동 여부를 떠나 공직사회와 시민들에게 충격으로 다가왔다.

 기강이 생명인 공직사회에서 다수가 상급자를 위압하고, 물리력을 행사했다는 사실을 용인하기 어려운 사회 분위기가 넓게 깔려있기 때문이다. 전주시가 전원을 공무집행방해 등 혐의로 경찰에 신속하게 고발한 것도 이러한 사회적 분위기와 무관하지 않다. 물질적 피해보다는 사건 자체가 갖는 상징성을 의식했기 때문이다.

 사태 발생 당시 시민은 물론 노조 내부에서도 “공무원의 신분을 망각한 지나친 행동이다”는 비난의 목소리가 높았다. 그러나 고발에 이어 3명이 구속되자 온건한 노조원들조차 집행부의 결정에 반감을 표시하는 등 분위기는 반전됐다. 소행은 밉지만 그래도 한 가족이나 다름없는 직원을 고발한 것은 지나치지 않았느냐는 여론이다.

 단호한 의지를 보인다는 집행부 의도와 달리 온건한 노조원을 자극하고, 우려했던 대로 민주노총이 대리전을 치르는 양상으로 치달으면서 사태는 복잡하게 꼬여가고 있다. 민주노총과 전교조, 경남 통영시지부의 전주시 방문이 이어지면서 내부 갈등은 전국적 이슈로 부각, 집행부와 노조의 의지와 관계없이 사태가 확산되고 있다.

 전국 최대 단일 노조인 데다, 단체장이 전국시장·군수·구청장 대표회장을 맡는 상징성을 감안할 때 민주노총에게 전주시는 반드시 넘어야할 전략적 격전장이나 다름없다. 전국 232개 기초단체 대표회장직을 수행하는 김완주 시장 역시 전국 기초단체로 파급을 우려해 선례가 될 수 있는 결정에 부담을 느끼고 있다.

 하지만 외부 세력을 배제한 자체 해결의 필요성을 주장하는 목소리가 높다. 집행부와 노조는 신속한 사태 해결과 함께 대화의 필요성에는 공감대를 형성하고 있다. 문제는 이견이 좁혀지지 않는다는 데 있다. 현행 법 테두리 내에서 조건없는 대화를 하자는 집행부와 활동 중인 노조의 실체를 인정하고, 단체교섭안 수용 및 고발 취소를 전제 조건으로 내세우는 노조의 주장이 맞서고 있다.

 <윤철 기획조정국장>

 “단체교섭의 형식만 따르지 않았을 뿐이지, 이미 노조의 실체를 인정하고 개별 사항은 협상을 통해 수용해 왔다. 하지만 현행 법이 뒷받침되지 않은 상태에서 단체교섭 요구는 응할 수 없다. 법 제정 이전이라도 직원 복지향상 등에 대해서는 언제든지 대화할 용의가 있다.”

 윤철 기획조정국장은 “노조가 시장의 공식 사과를 요구하고 있지만, ‘불법 단체’라는 표현은 공인노무사의 자문 내용에 불과해 명분이 약하다. 그러나 자문 내용을 여과 없이 언론에 전달한 점은 유감스럽게 생각한다”면서 “노조가 요구하는 실질적인 건의 사항을 간담회 형식을 통해서 언제든지 대화한다는 게 시의 기본 방침”이라고 말했다.

 윤 국장은 “공무원의 사주(社主)는 시장이나 몇몇 간부 공무원이 아닌 시민”이라면서 “행정 공백에 따른 시정 혼란을 최소화하기 위해 외부 세력을 배제한 뒤, 대화에 응하라”고 촉구했다.

 <오광진 노조지부장>

 “폭력사태까지 비화돼, 정식으로 사과한다. 하지만 자식이나 다름없는 직원을 고발하고, 구속시킨 데 분노를 느낀다. 공개 사과 및 고발 취하가 전제된다면 언제든지 대화에 응하겠다.”

 오광진 노조 지부장은 “아직 법이 제정되지는 않았지만 전국적으로 공무원노조가 활동 중인 상황에서 ‘불법 단체’라는 표현을 사용한 것은 노조의 실체를 인정하지 않으려는 의도나 다름없다”면서 “이 부분에 대한 명확한 공개 사과와 함께 단체교섭에 응해야한다”고 말했다.

 오 지부장은 “집행부가 계속해서 노조의 요구를 수용하지 않은 채 대화를 거부한다면 시장퇴진·준법투쟁 등 투쟁 수위를 높이겠다” “이로 인한 모든 책임은 집행부에 있다”고 강조했다.

 <공무원노동조합법 어디까지 왔나>

 공무원의 노조활동을 보장하는 ‘공무원노동조합법’은 올해 6월 정부 입법으로 발의 돼, 법제처 심의를 마치고 현재 국무회의 상정이 유보된 상태다. 이 법은 공무원의 노조 설립 및 가입(6급 이하), 자치단체장과 단체협약 체결 권한을 보장하고 있다. 그러나 정치활동과 파업·태업 등 정상적 업무를 저해하는 행위는 금지하고 있다.

현재는 공무원노동조합법이 제정되지 않아 공무원의 노조결성 및 단체교섭·단체행동은 허용되지 않는다. 헌법(33조)은 근로조건 향상을 위해 근로자의 단결권·단체교섭권·단체행동권을 인정하고 있지만, 공무원은 법률이 정하는 경우로 제한하고 있다. 또 노동법(5조)은 ‘노동자는 노동조합을 조직하거나 가입할 수 있다. 다만 공무원과 교직원은 따로 법률로 정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공무원노동조합법은 이리면 연내 제정이 예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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