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루지기 <608>혼자 방사를 해버린 조선비
가루지기 <608>혼자 방사를 해버린 조선비
  • <최정주 글>
  • 승인 2003.11.02 14:3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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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옹녀의 전성시대 <84>

“아무한테나 금가락지를 준다더냐? 다 받을 값어치가 있는 계집들한테만 주었니라. 요분질을 잘 한다던지, 감창이 기가 막히다던지, 그도저도 아니면 얼굴이라도 예쁜 계집들한테만 주었니라.”

“어련허시겄소. 헌디, 왜 그리 허망허게 싸뿌럿소? 꼭 손장난허다가 온 사내맨키로요.”

“미안하구나. 마누라가 아픈데도 너만 생각하고 있었더니, 이 놈이 급했던 모양이구나. 문전 구경도 못하고 혼자 싸다니, 흐참, 거. 옷만 버렸구나.”

조선비가 입맛을 쩝 다셨다.

“괜찮소. 나리가 초상치룰라, 안방마님 병수발 드실라, 몸이 노곤했던 갑지요. 그럴 때도 있다고 그럽디다. 맴 쓰지 마시고 술이나 마십시다. 닭괴기가 다 식겄구만요.”

아랫녁이야 섭섭하다고 저 혼자 안달이었지만, 차라리 잘 되엇다 싶기도 했다. 서방님의 앙갚음을 당장에 못하는 것이 마음에 걸렸지만, 따지고 보면 조선비가 죽을만큼, 또는 병신이 될만큼 잘못한 일도 없지 않은가. 양반님네의 위세를 하루 이틀 겪어본 것도 아니고, 문중에서도 아끼는 양반님네의 정자를 상것이 더럽힌 일은 볼기를 맞고도 남을 일이었다. 따지고 보면 조선비한테 앙갚음을 하겠다고 서방님 앞에서 제 년이 먼저 입을 놀린 것도 그 핑게로 서방님이 아닌 다른 사내의 살맛이 탐이 나서인지도 모를 일이었다. 문전에 들기도 전에 혼자 방사를 해버린 조선비가 야속하기는 했지만, 어차피 구름을 타며 놀자고 만난 사내는 아니지 않은가? 그 사내의 물건이 오줌 마려운 예닐곱 사내의 그것만도 못하다는 것은 이차미 알고 있었던 일이 아니던가.

“네가 그리 말해주니 고맙구나. 다음에는 내가 몸을 잘 추스려 너를 호강시켜주마. 꼭 구름을 타게 만들어주마.”

조선비의 말에 옹녀 년이 호호 웃었다.

“그럽시다. 쇠털겉이 많은 날인디, 하루 이틀 미룬다고 어디가 덧날랍디여. 술이나 드십시다.”

옹녀 년이 먼저 방바닥에 퍼질러 앉으며 화주병을 들었다. 따라 앉으려던 조선비가 엉거주춤한 채 얼굴을 찡그렸다.

“왜라우? 이년이 괜찮단디, 멋이 또 맴에 걸리시요?”

“아무래도 집에 가서 속곳부터 갈아입고 와야겠구나. 끈적거리는 것이 영 기분이 안 좋구나.”

“호호, 그랬지라우? 바지에다 방사럴 했지라우. 참시만 지달리씨요. 얼렁 이년이 물수건얼 맹글아 오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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