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루지기 <654>오널 실컷 묵어보십시다
가루지기 <654>오널 실컷 묵어보십시다
  • <최정주 글>
  • 승인 2003.12.24 17:52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11. 강쇠의 전성시대 <34>

“에이, 사람도 참. 아무리 이물어졌다고 해도 별 소리럴 다허능구만.”

“아니랑깨요. 이놈이 보기에 아짐씨가 바가지럴 긁는 것언 아자씨가 퇴?이처럼 빨리 방사를 했기 땜인디, 그런 아짐씨의 입얼 막는 방법언 시간얼 길게 끄는 수 백이 없당깨요. 용두질로 한번 방사럴 허고 나면 두번째넌 시간얼 끌 것이 아니요?”

“자네 말이 옳기넌 허네만, 그 아깐 것얼 손바닥에 싸부린단 말인가?”

사내가 입맛을 쩝 다셨다.

“안 그러면 살방애럴 찜서 엉뚱한 다른 생각얼 한번 해보씨요.”

“다른 생각얼?“

“근당깨요. 무거운 나무짐얼 지고 오르막얼 올라가는 생각얼 헌다든지, 찬물에 멱얼 감는 생각얼 허시든지요, 아니면 아부님이나 어무님이 돌아가셨다고 생각해도 괜찮고요. 그런 생각덜얼 허다보면 살방애럴 오래오래 찔 수 있을 것이구만요.”

“허허, 자네넌 아는것도 참 많구만. 나이도 어린 사람이 어찌 그리 잘 안당가?”

“잡놈으로 떠돌다본깨, 저절로 알아집디다.”

“그런가? 암튼지 고맙구만. 자네 말대로 해서 마누래가 앙탈얼 안 부리면 내가 닭이라도 한 마리 잡아서 술 한 잔 대접함세.”

“고맙구만요. 동네 다른 남자분들헌테도 말씸 좀 잘 해주시씨요. 이놈이 쬐껴나지나 않그로요.”

“누가 자네럴 내쫓는단 말인가? 내가 나서서 말릴텐깨 당최 걱정허덜 말게.”

둘이 그런 얘기를 도란거리며 인월천을 건넜을 때는 해가 서산에 뉘엇뉘엇 넘어가고 있었다.

“딱 맞게 왔구만요. 나넌 해가 질녁에 술맛이 젤로 납디다.”

“해가 쨍쨍헌 대낮보담언 술맛이 나제.”

사내가 침을 꼴깍 삼켰다.

“아자씨도 술 좋아허신갑소이?”

“좋아허제. 묵고 싶을때마동 못 묵어서 그렇제.”

“오널 실컷 묵어보십시다.”

“난 동상만 믿네.”

사내가 웃음 띤 얼굴로 돌아보았다. 사내의 동상이라는 말에 강쇠 놈이 동상, 동상, 하고 두어번 중얼거려 보았다. 난생 처음 들어보는 소리였다. 철들고 나서 아버지나 어머니, 혹은 형님이나 동생을 불러 본 일이 없었다. 혼자 떠돌며 잡놈으로 살아 온 강쇠 놈에게 육친의 이름을 불러볼 기회가 없었던 것이엇다. 나에게는 그런 것이 없다고 잊고 살 때에는 몰랐는데, 사내의 입에서 동상이라는 소리가 나오자 정말 사내가 친형님이라도 되는 듯이 정이 느껴졌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