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루지기 노래 <680>창날이 가슴을 향해 쿡
가루지기 노래 <680>창날이 가슴을 향해 쿡
  • <최정주 글>
  • 승인 2004.01.28 18:3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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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강쇠의 전성시대 <60>

그것도 스스로 깨어난 것이 아니라, 누군가 문을 벌컥 열었기 때문이었다. 정사령 놈이 햇살에 반짝이는 창날을 겨누고 달려오는 꿈을 꾸던 강쇠 놈이 눈을 번쩍 뜨자 음전네가 숨을 색색거리며 서 있었다. 그런 음전네의 손에는 살이 토실토실한 암탉 한 마리가 들려있었다.

“어? 아짐씨 왔소?”

강쇠 놈이 먼저 자리에서 일어나 바지를 입었고, 주모가 천천히 일어나 치마를 입고 저고리를 걸쳤다.

“내가 이럴 줄 알았구만.”

음전네의 눈꼬리가 치켜 올라갔다.

강쇠 놈은 아무 말도 못하고 주모가 한 마디 툭 던졌다.

“동상언 어제밤에 실컷 재미럴 봤지 않았는가? 동상이 묵고 남치기럴 내가 묵었는디, 너무 섭섭해 하지 말게.”

“흐기사, 성님도 나도 임자넌 아닌깨요. 누가 누구헌테 머라고 헐 필요가 없제요. 나오씨요. 닭죽이나 끓여 묵읍시다.”

“닭언 내 집이도 있는디, 병 든 서방님 봉양이나 허제.”

주모가 은근히 음전네의 약을 올리며 방을 나갔다. 음전네가 한 쪽 눈을 찡긋하며 주모를 따라갔다.

‘흐흐, 오널 절못허면 닭괴기 묵다가 쌈나게 생겼는디. 닭괴기가 아니라 나럴 서로 묵겄다고 쌈이 나면 어뜨케 허제?’

강쇠 놈이 흐흐흐 웃다가 뒤로 벌렁 드러누웠다. 닭이 익는 동안에 잠이나 한 숨 더 자자는 속셈이었다. 두 여자는 어차피 서로간에 두 눈 뻔히 뜨고 지키고 있을 판이니, 아무도 잠을 방해하지는 못할 것이었다.

강쇠 놈이 스르르 잠 속으로 빠져 들어가는데 꼬꼬댁 꼭 꺄르릉 하고 닭이 모가지를 비틀리는 소리가 아련히 들려왔다.

‘미안허구만. 허나 내 탓이 아니여. 날 원망허지 말어.’

강쇠 놈이 중얼거리다가 잠 속으로 빠져들어갔다. 그러나 편한 잠은 되지 못했다. 잠보다 꿈이 먼저 왔다. 옹녀 년이 정사령같기도 하고 조선비같기도 한 사내놈과 얽혀 살방아를 찧는가 싶더니, 아득히 높은 벼랑으로 떨어지는 모습이 스쳐가는가 했는데, 꿈은 어느 사이에 강쇠 놈이 정사령 놈의 창날 앞에서 벌벌 떨고 있는 모습으로 바뀌어 있었다.

발가벗은 채 살려주씨요, 살려주씨요, 하며 두 손을 싹싹 비비고 있는데, 음전네가 천하의 잡놈이니 창날로 칵 찔러 죽여뿌리씨요, 하며 표독스럽게 내뱉았다.

그 순간 정사령 놈의 창날이 가슴을 향해 쿡 찔러왔고, 강쇠 놈이 아아악, 비명을 지르며 눈을 번쩍 떴다.
 여전히 어두웠고, 밖은 조용했다.

‘참, 더런 꿈도 다 있구만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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