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정조때 한학자 유한준이 남긴 글을 유홍준 교수가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에서 인용해 모든 이의 가슴에 새겨 놓은 명언이다. 이 말은 문화유산이나 미술품만이 아니라 모든 것에 적용 된다. 우리의 눈에 보이는 모든 것은 그대로 바깥 모습이 보이지만, 보이는 그것이 전부가 아니라는 점에서다.
서예 대가를 이룬 석전 황욱 선생의 장남, 제 5∼6대 도의원, 초대 도립국악원장으로 전북 문화계에 더 잘 알려진 황병근씨(69)씨가 제 20대 전북예총회장에 당선됐다. ‘정치인’과 ‘노익장’이라는 편견의 잣대가 초반부터 드리워지면서 12월 말부터 선거 당일(1월 29일)까지 적지않은 진통을 겪어야했던 그는 당시 상황이 ‘첩첩산중(疊疊山中)’이었다고 술회했다.
그러나 황 회장은 예술분야에 있어 그 누구보다 뛰어난 관록을 자랑한다. 4년 임기동안 7천 200여명의 도내 문화예술인들을 아우르고 전라북도 문화계 발전을 위해 발로 뛰겠다고 말하는 황병근 신임회장. 봄볕마냥 따사로운 햇살이 내리쬐는 날 그를 만나봤다. <편집자 주>
-전북예총 수장직을 맡게 된 점을 먼저 축하드립니다.
▲정말 쉽지 않은 길이었습니다. 이번 경선을 통해 신세대의 위력을 또한번 느꼈습니다. 그리고 연륜·경륜도 중요하지만 쇄신도 중요하다는 것을 깨달았고요.
힘들었지만 좋은 결과를 얻게 돼 기쁩니다. 선거 후유증을 해소하고 도내 예술인들을 아우르는 것 역시 제 몫이라고 생각합니다. 어떻게든 열심히 뛰어야지요.
-물갈이, 개혁 등 갖가지 말이 요즘 화두입니다. 예술계 역시 예외는 아닌데 어떻게 보십니까?
▲‘개혁’에 대한 용어 개념부터 재정립돼야 합니다. 개혁이라 하면 잘못된 것, 즉 오류를 바로 잡는 것입니다. 바꾸는게 무조건 개혁이 아닙니다. 정도(正道)를 걷고 있는지 그게 핵심입니다. 그리고 개혁적인 성향의 판단 기준은 절대 나이가 돼서는 안됩니다. 저 역시 전북예총의 잘못된 점은 바로 잡을 계획입니다. 저는 저 자신이 충분히 개혁적 성향이 있다고 보는데요.
-4년간 내걸 캐치프레이즈는 무엇이며 그렇게 정한 이유는 무엇입니까?
▲‘예술의 날개를 펴자’로 정할 계획입니다. 김남곤 전임 회장께서 ‘치솟는 예술의 땅’을 만들어 주셨으니 이제 전북 예술계는 그동안 쌓아온 역량의 나래를 펴야 할 때라고 생각합니다.
-현재 지평을 넓히고 있는 전북 민예총과 유대, 혹은 견제도 필요할 것이라고 봅니다. 어떻게 전망하시는지요.
▲전북 민예총은 개혁적 성향을 갖고 있는 사람들로 똘똘 뭉쳐 있습니다. 전북 예총이 본받아야 할 대목이 참 많아요. 그들 역시 우리에게 배울 점이 있을 것이고요.
전북 예총 회원들도 적극적·창의적 자세로 문화적 힘을 키워나가야 합니다. 여담이지만 최동현 회장과 원활한 유대관계를 맺고 있습니다. 향후 상호 협의를 통해 바람직한 경쟁구도를 키워나가는게 중요하겠지요.
-그동안 전북예총의 행사는 전주 중심으로 치러져 왔다는 질타를 받아왔습니다. 극복 방안이 있다면….
▲사실 그동안 전북예총은 시군 지부 예총에서 치르는 행사에 대해 예산 지원을 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다보니 협조 체계가 형성되지 않아 ‘따로 국밥’식 형태가 된 셈이죠. 무엇보다 예산 확충이 중요할 것이고 이를 위해 노력할 것입니다. 그리고 예술인들의 뜻을 하나로 모으는 작업 또한 게을리하지 않겠습니다.
-대도시에서는 기업이 예술계를 지원하는 이른바 메세나운동이 활발히 펼쳐지고 있습니다만 전라북도는 여전히 미약한 수준입니다. 염두해 두고 있는 복안이 따로 있으신지요?
▲현재 (주) 하림이 전북예술상 수상금을 지원하는 것 역시 메세나 운동의 일종입니다. 제가 97년 우리문화진흥회를 발족하고 98년 승인받은 것은 메세나 운동의 활성화를 위해서였습니다. 그런데 당시 IMF시대가 왔고 각 기업이 어려운 상황에 빠졌습니다. 그래서 문화예술인 및 단체에 대한 기금 확보가 어려워진 것입니다.
회장 임기인 4년동안 이 운동 확산에 정열을 쏟을 예정입니다. 이를 통해 예술인에 대한 포괄적 지원에 나설 것입니다.
-이번 선거에서 가장 연장자로 회장님의 나이와 건강을 염려한 후보 및 대의원들도 많았을 것으로 짐작됩니다. 별도 건강 관리 비결은 무엇인지요?
▲제가 이 나이에 젊은이도 불기 힘들다는 트럼펫을 붑니다. 현재 브라스밴드 ‘에버그린’ 단장으로 있고요. 최근에는 바빠서 운동에 소홀했는데 평소 조깅을 즐겨합니다. 그리고 좋은 생각을 많이 하고, 많이 웃고…. 그것이 제 건강비결인 것 같습니다.
-끝으로 도민과 예술인에게 당부하고픈 말이 있다면….
▲전북 예술인들에게는 서두에 말했듯 창의성을 강조하고 싶습니다. 도민들로 하여금 전북 예술이 사랑을 받을 수 있느냐, 그렇지 않느냐는 예술인 자신에게 달려 있습니다. 각종 이벤트로 도민의 눈길을 이끌고 희생해야 할 것입니다.
전라북도는 문화예술의 토양입니다. 그러나 전북도는 예술의 고장을 자처하면서도 예술 및 예술인들을 외면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보니 문화예술의 땅이 점차 둔화돼 가고 있죠. 21세기는 문화시대라고도 합니다. 둔화된 토양에 생기를 불어넣는 도민이 되길 바랍니다.
<제 20대 황병근 예총 회장은?>
황병근 신임회장은 그동안 닦아온 문화예술적 소양과 20여년간 쌓아온 문화예술, 행정 경력 및 2대에 걸친 재선 도의원으로서 구축한 기반을 자랑하고 있다.
5∼6대 전북도의회 의원으로 활약하면서 전라북도 문화예술과가 문화관광국으로 승격되는데 산파역을 자임했는가 하면 한국소리문화의 전당 건립 촉구와 부지확보에 결정적인 기여를 한 것도 그다.
이와 함께 전라예술제 전북도지원금과 국악협회 고수대회 지원금을 2배로 증액함으로써 도내 문화계의 지평을 한차원 끌어 올렸다는 호평을 얻었다.
국악과 무용, 연극, 미술 등을 두루 섭렵하고 있다는 점도 황 회장의 강점이다. 황병근 신임회장은 국악협회 전북도지회장과 도립국악원장(10년)을 역임하면서 국악과 무용 및 연극을 섭렵했으며 학교 밴드와 군악대 경찰악대 등에서 음악과 연예활동을 펼쳤다.
그는 또한 실질적 영화보급에 앞장섰던 영화인이다. 59∼61년까지 세기영화사 전북지사에 근무하면서 전주 삼남극장(현 전주 CGV)에 70㎜영사기를 보급, 영화발전에 기여한 바 있다.
미술 역시 부친인 서예가 황욱 선생 보좌 관계로 깊은 인연을 맺고 있다.
10개 협회와 8개 시군지부의 수장인 예총 회장. 그는 선거운동 당시 각 장르에 대한 소화 가능성이 보존 관리를 가능케 한다고 주장해 왔다. 당선 후 만난 황 회장은 임기내 공약사항 완수를 약속했고 그가 확보한 각종 강점을 바탕으로 전북문화계의 발전을 이끌겠다고 다짐했다.
황병근 회장은 전북대 경영대학원 최고 경영관리자 과정·전북대 행정대학원을 수료했으며 (사)한국국악협회 전북도지회 지회장, (사)전주대사습놀이보존회 이사 및 이사장, 전북도립국악원 초대원장 등을 역임했다.
현재 (사)호남오페라단 이사, (사) 우리문화진흥회 이사장 및 회장으로 재임 중이며 브라스밴드인 ‘에버그린’ 단장으로 예술에 대한 열정을 펼쳐보이고 있는 그는 전인주 여사(기전여대 교수)와 사이에 3남 1녀를 두고 있다.